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8호 죽정리 국장생 전경과 안내판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8호 죽정리 국장생 전경과 안내판

국장생이란, 말 그대로 나라의 명으로 건립된 장생이란 뜻이다. 사찰의 경계 표시뿐만 아니라 비보(裨補)의 역할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장승이라고 불리었다. 죽정마을 국장생은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거친 표면에 국장생(國長生) 세 글자의 한자를 크게 새겨 넣었다. 

안내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정리 국장생 /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산114-4에 있다. 죽정리에서 도갑사 쪽으로 가다보면 장수발자국 설화가 있는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조금만 위로 가다가 왼쪽 숲속으로 10여m 들어가면 영암 죽정리 국장생을 만날 수 있다. 도갑사 옛길이라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죽정마을 국장생의 전체 크기는 높이 1.25m, 너비 0.67m, 두께 0.36m이다.국장생 하단에는 '석표사좌(石標四坐)'가 새겨져 있다. 이는 도갑사의 경계를 표시하는 석표인데 3기의 석표가 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림마을 소전머리 황장생, 군서와 학산의 경계지점에 있는 메밀방죽 장생이 현존하고 있다. 나머지 한 기는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죽정리 국장생 /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산114-4에 있다. 죽정리에서 도갑사 쪽으로 가다보면 장수발자국 설화가 있는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조금만 위로 가다가 왼쪽 숲속으로 10여m 들어가면 영암 죽정리 국장생을 만날 수 있다. 도갑사 옛길이라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죽정마을 국장생의 전체 크기는 높이 1.25m, 너비 0.67m, 두께 0.36m이다.국장생 하단에는 '석표사좌(石標四坐)'가 새겨져 있다. 이는 도갑사의 경계를 표시하는 석표인데 3기의 석표가 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림마을 소전머리 황장생, 군서와 학산의 경계지점에 있는 메밀방죽 장생이 현존하고 있다. 나머지 한 기는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영암 죽정리 국장생은 돌로 만든 장승으로 ‘영암 죽정리 국장승’으로도 불린다. ‘장생(長生)’이란 표기는 주로 신라와 고려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고려 말과 조선 전기 이후로는 ‘장승(長丞)’이라는 표기가 많이 보인다. 이를 미루어 죽정리 국장생은 건립 연대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미수기언』, 『동국명산기』, 『동환록』 등에 기록이 보인다. 건립된 시기는 최근의 판독에서 1090년(대안 6년)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국장생이 세워진 1085년(고려 선종 2)과 비슷한 시기이다. 

영암 죽정리 국장생은 장방형의 자연 석재를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사각 석비형의 입석 장생이다. 장생이 있는 곳은 도갑사의 옛길로 전하고 있어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위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장승 10m 근처의 바위에서 음각 문자가 발견되었는데 ‘건릉 향탄 봉안소 사표 내 금호지지(健陵香炭奉安所四標內禁護之地)’라고 새겨져 있다. ‘건릉’은 조선 정조 대왕 능의 이름으로 1800년에 축조되었고 1821년 왕비와 합장하였다. 

입석이 국가에 의하여 금표의 역할을 하는 경계처였다는 사실과 함께 한국 장승 연구의 열쇠가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안내판에 나온 것처럼 국장생에서 10m 떨어진 자연 바위에 새겨진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奉安所四標內禁護之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건릉(健陵)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정조대왕의 능을 말하는데, 향탄(香炭)은 숯과 향의 재료가 되는 향탄목이다. 여기서 ‘건릉향탄봉안소’는 ‘건릉의 제사에 쓸 숯과 향을 봉안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표내금호지지(四標內禁護之地)'는 무슨 뜻일까? 4기의 석표 안쪽은 건릉의 향탄봉산에 속하므로 어떤 행위를 금지하고 뭔가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고려 전기에 도갑사의 영역을 표시하고 사찰을 비보하기 위해서 세운 4기의 장생을 기준 삼아 조선 후기에 향탄봉안소를 설정하고, 4기의 석표 안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나무를 함부로 베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으로 국장생 곁에 특별히 명문을 새겨넣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료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는 도갑사 일대가 건릉의 향탄봉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를 관리했던 사찰이 도갑사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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