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63)
■ 도갑리1구 죽정마을(5)

죽정마을 안용당의 봄 풍경 / 문산재 가는 산기슭 아래 울창한 대숲 품에 안겨 있는 집이 안용당이다. 안용당은 창녕조씨 태호공 조행립의 삼남인 조경창(1610~1678)의 호이다. 음지마을에 있으며 순흥안씨(順興安氏)가 처음 터를 잡았고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살다가 1600년대에 창녕조씨(昌寧曺氏)에 ‘안용당’이라는 호를 가진 분(조경창)이 살았으며, 그 후 전주최씨가 살았고 현재는 낭주최씨가 살고 있다. 집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안용당’이라는 당호가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죽정마을 안용당의 봄 풍경 / 문산재 가는 산기슭 아래 울창한 대숲 품에 안겨 있는 집이 안용당이다. 안용당은 창녕조씨 태호공 조행립의 삼남인 조경창(1610~1678)의 호이다. 음지마을에 있으며 순흥안씨(順興安氏)가 처음 터를 잡았고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살다가 1600년대에 창녕조씨(昌寧曺氏)에 ‘안용당’이라는 호를 가진 분(조경창)이 살았으며, 그 후 전주최씨가 살았고 현재는 낭주최씨가 살고 있다. 집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안용당’이라는 당호가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안용당기(安用堂記)

옛날 한창여(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가 이원(당나라 사람)이 반곡(盤谷)으로 돌아가는데 전송을 하면서 이원의 말을 기술하고 세상에서 때를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의 일을 낱낱이 서술하였다. 비록 한결같이 운명으로 돌리기는 특별히 형세를 따르려는 분주함과 만에 하나라도 하는 요행을 바라는 자를 재기하여 결단하였으니 그 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한 구분이 어찌 뚜렷하지 않겠는가? 아! 선비가 세상에서 때를 만나거나 때를 만나지 못함은 제각기 운명이 있어 진실을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없이 오랜 세월 동안 그 운명을 아주 편하게 여기며 외부에 구하지 않는 자를 어찌 그렇게 보기가 드물었던가? 

대대로 명성을 드날리는 자는 항상 얽매이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겼고 한적한 곳에 머문 자는 언제나 파묻혀 없어지게 됨을 괴롭게 여겼으니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는 것 또한 이치와 형세가 그런 것이다. 그 두 가지 일에 나아가 논한다면 드러나고 숨겨짐과 올라가고 침체되는 것이 어찌 구름과 진흙의 현격한 차이뿐이겠는가? 만고의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따져서 보태지거나 덜린다면 저 속을 태우고 외부로 치닫느라 매우 부산하게 바쁜 시간에 쫓기는 것과 은퇴하여 누추한 집에서 생활하며 열 이랑쯤 되는 경작지 사이에서 여유 있게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낫겠는가? 이것이 중장통(仲長統)이 즐거운 마음으로 한가하게 살면서 심지어 비유하기를 하늘을 능가하고 우주를 뛰어넘을 수 있어 제왕이 있는 곳에 들어가는 사람에 대하여 부러움이 없다고 한 까닭이다. 

비록 소장공(蘇長公)이 금문(金門)에 등용되고 옥당(玉堂)에 올라 명망과 지위가 빛나게 한 시대를 드날렸지만, 그가 영남의 바닷가로 귀양 가게 되는데 이르러서는 도리어 무성한 나무 그늘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사람만 못하며 석가와 노자도 오히려 넌지시 말하여 깨우치게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을 관찰하면 한가로움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 또한 명망을 구하는 사람보다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이미 더러는 한가로움을 얻었으나 서둘러서 명망을 구하느라 더러운 것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형벌에 저촉되기도 하면서 늙어서 죽음에 이르러서도 뉘우치지 못하니 이원의 말과 같은 자가 많기도 하도다. 이것이 어떻게 그 운명을 편안하게 여길 수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산(창녕의 옛이름) 조중선장(曺仲宣丈)(조경창을 이름 – 태호공 조행립의 삼남)은 본래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의 자손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에 그의 가대인을 모시고 난리를 피하여 낭주(영암의 옛 이름) 구림촌으로 옮겼다가 그대로 그곳에서 사셨다. 구림촌은 월출산의 아래에 있는데 호수와 바다, 그리고 숲이 무성한 동산의 경치가 남방에서 으뜸이다. 

조장(曺丈)(조경창)이 기거하는 곳은 구림촌의 한쪽 치우친 곳을 차지하여 그윽하고 정숙한 흥취를 얻을 수 있고 곁에는 비탈진 밭과 낮은 땅이 많아 그곳에서 나는 이익을 거두어 삼복과 납일의 경비로 충당하기에 넉넉하며, 물고기를 잡는 포구와의 거리는 일백 보가 안 될 정도로 가까워 날이면 날마다 반드시 그물을 들고 살찐 고기를 잡을 수 있어 아침저녁의 반찬을 잇대기에 풍족하다. 또 좌우로 귤나무와 유자나무를 심고 석류 매화 살구나무 등을 심어 나뭇가지가 이어져 번갈아 그늘을 이루며 꽃과 열매가 찬란하게 비춰서 기이한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사치스럽게 음식을 죽 늘어놓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집의 왼쪽에 나아가 그곳을 트고 마루를 만드니 서늘한 헌람과 따뜻한 방이 사계절에 맞추어 절제하고 조화되도록 하기에 풍족하며 마루의 앞과 뒤에는 돌을 쌓고 풀과 대나무를 나열하였다. 또 연못을 파고서 창포와 연꽃을 심고는 지팡이에 나막신을 신고 그 가운데 산보하면서 그때그때 사물의 변화를 관찰하며 귀나 눈을 즐겁게 하는 일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또 손님이 오면 친밀하거나 소원함을 가리지 않고 고기를 베어 술안주를 하게 하여 서로 마주 앉아 즐겼으며 술잔을 멈추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흥취가 절정에 달하면 번번이 사냥개를 끌고 새매를 팔뚝에 앉혀 하인을 시켜 말가죽으로 만든 부대를 휴대하게 하여 평평한 초원과 큰 산기슭 사이에서 멋대로 노닐게 하여 꿩과 토끼 사냥을 즐겁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끔 순여(대나무로 엮어 만든 가마)나 거룻배가 있으면 생각대로 가는 곳은 산에 있는 절이 아니면 호숫가의 정자였으니 그것 또한 답답한 가슴을 후련하게 하며 깊은 근심을 트이게 하여 일생을 마칠 때까지 싫어하지 않기에 충분하니 아무리 반곡의 부족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이보다 지나치겠는가? 

내가 알기로는 세상에서 한가하고 여유 있다는 이로는 조장(曺丈)과 같은 이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사모하고 침체되거나 묻혀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일은 조장(曺丈)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다르겠는가? 내가 조장을 관찰하건데 젊어서 과거 공부를 익히지 않고 느슨함을 즐기며 스스로를 마음 가는 대로 맡겨 대 명망가의 대열에 이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의로운 기상과 사물을 처리하는 국량은 오늘날의 집사가 된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여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그의 친척과 고구 그리고 인척은 세상에서 일컫는바 명문과 망족(望族)이 아님이 없으며 권세를 잡고 법을 집행하는 자가 앞뒤에 서로 잇달았으니 조장이 한번 입을 열면 장점을 추켜세워 추천하는 사람으로 참여하기에 모자라지 않으며 검은 인끈을 쌓고 백성과 나라를 자라게 한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조장이 홀로 벌써 그 한적함을 얻어 명칭을 쓸데가 없고 마음이 조용하고 욕심이 없어 그 지조와 명을 편안하게 여기며 연세가 지금 칠십이 임박하였다.

머리칼이 세도록 벼슬하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애석하게 여겼지만, 조장은 바야흐로 한가로이 스스로를 여유 있게 여기며 근심하는 뜻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어찌 이른바 그 운명을 편안하게 여기며 외부에 구하지 않는 분이 아니겠는가? 그 앞서 형세를 따르려는 분주함과 만에 하나라도 하는 요행을 바라면서 명망을 구하느라 더러운 것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형벌에 저촉되는 틈바구니에서 늙어 죽는 자와 비교한다면 과연 어떻다고 하겠는가?. 우재 송선생(宋先生)(우암 송시열을 이름)이‘안락옹(安樂翁)이 이미 한가함을 얻었는데 이름을 고쳐 지어 어디에 쓰겠는가?’고 한 말을 취하여 그 당(堂)에 이름을 붙이기를 안용(安用)이라고 하였으니 조장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고 또한 세상의 명망을 쫓으려다 자신을 망치는 자들을 경계시킬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조장이 나에게 그 내용을 부연하여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나 같은 사람도 헛된 명망에 잘못 연루되어 한가롭기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 조장이 안용당에 올라 그윽이 그분의 한가로움을 부러워하고 그의 뜻이 세속의 사람과는 멀리 앞서 있음을 올바르게 여기면서 이에 기문을 쓴다.

때는 숭정기원 무오년(戊午年)(1678 숙종 4년) 계하 상한에 문곡기인 김수항이 짓다.
(안용당기 자료 제공 – 최기욱 전 영암향교 전교)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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