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61)
■ 도갑리1구 죽정마을(3)

월대암에서 북서쪽으로 내려다본 영암평야와 죽정마을 전경 
월대암에서 북서쪽으로 내려다본 영암평야와 죽정마을 전경 
월대암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월출산 전경 산기슭 아래로 도갑저수지가 보인다. 도갑저수지를 따라 오르다 보면 산속에 천년고찰 도갑사가 있다.
월대암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월출산 전경 산기슭 아래로 도갑저수지가 보인다. 도갑저수지를 따라 오르다 보면 산속에 천년고찰 도갑사가 있다.

도갑리 죽정마을은 면적이 굉장히 넓다. 동쪽은 선인봉에서 영암읍 회문리에 이르고, 미왕재(억새밭)에서 강진군 성전면 죽전마을과 접경한다. 동남쪽은 안바탕에서 학산면 묵동마을에 이르고, 남쪽과 서쪽은 동구림과 접한다. 북쪽은 성양리와 경계를 이루고 북동쪽은 월곡리와 접경하고 있다. 

죽정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음지마을 뒷동산에 있는 월대바위에 올라가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월대바위를 ‘황(凰)바우’라고 부른다. 

월대암 위에 올라서면 서쪽과 북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영암평야가 시야에 들어오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월출산의 웅장한 봉오리들과 짙푸른 숲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죽정마을은 월출산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도갑사, 상견성암, 억새밭, 홍계골 도갑천과 군서천 상류, 도갑저수지, 문산재 등을 품어 안고 있다. 사찰, 고인돌, 장생, 고택, 돌담길 등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그리고 마을 구석구석에 흥미롭고 정감 있는 옛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전 영암향교 전교를 역임하신 최기욱 훈장님을 만나 죽정마을에 전해오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청해 들었다. 다음은 그 기록이다.

백호등 청룡끝

죽정마을로 보자면 좌청룡, 우백호가 있어. 좌청룡은 안용당 앞 논 끄트머리쪽으로 청룡끝이 되제. 어른들 말씀에도 ‘청룡끝이 무서운 곳이여. 그곳에 늘 범이 앉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된다’고 했어. 우백호는 양한철씨 사업장인 목공 일터에 해당된다고 봐야제. 하천변에 나무공장도 있고. 그곳을 초빙굴이라고 불렀제. 아조 무서운 곳이여. 낮에도 혼자 가면 무서운 데거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거기가 동백 숲이 우거져 있었제. 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컴컴하게 우거져 있었제. 죽정마을에서는 그 초빙굴을 백호등이라 하였고.

하루는 컴컴헌 한 밤중에 사랑방에서 내기를 하게 되었다요. 옛날에는 사랑방에 출입할 때 도포를 입고 다녔제. 도포 입은 양반들이 담력 겨루기를 한 것이제. ‘어디 담력 센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봐라. 백호등을 갔다 올래, 청룡끝을 갔다 올래?’한 것이제. 다녀오기만 하면 큰 선물을 줄 것인께 말이여. 그러니까 한 양반이 내가 동백 숲에 갔다 오겠다고 큰소리를 쳤어. 그럼 거기까지 가서 징표로 말목을 지르고 오라고 했제. 그래야 갔다온 증거가 되니까. 그래서 그 양반이 혼자서 백호등 초빙골을 간 것이여, 그 칠흙같이 컴컴한 밤에.

그란디 동백 숲에 가던 양반이 큰소리는 치고 나왔어도 깜깜한 밤중에 혼자서 말목 지르러 가는디 얼마나 무서웠겄소? 거기는 낮에도 혼자 가기가 무서운 곳이라니까. 귀신 나온다고 한 곳이랑께. 아무튼 이 양반이 어뜨케든 가긴 갔어. 그 무서운 백호등 동백 숲에 가서 말목을 지르고 나서 일어나려 하는데, 아 누가 도포자락을 딱 잡아 땡기는 것이 아니여? 그 순간 간담이 싸늘해졌을 것 아니요? 오메, 귀신이 날 잡아 당기는구나!하는 무선 생각이 들면서 아이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나고 싶은데, 아 이놈의 도포자락이 안 따라오는 거라. 아무리 팔을 휘둘려도 안 되는 것이여. 귀신이 얼마나 쎄게 도포자락을 잡아 땡겨분지 도저히 해볼 수가 없는 것이제.

한편 사랑방에서 내기를 걸었던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이 양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제. 그란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것이여. 올 때가 폴세 지났는디 하도 안 와서 여럿이서 백호등 동백 숲으로 갔제. 동백 숲에 와서 본께, 아 이 양반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여. 흔들어 깨어도 기척이 없어. 백호등 귀신한테 놀래서 혼절해부러갔고 숨을 거두어 버린 것이여.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 보니께 아 도포자락이 말목에 휩쓸려 박혀 있었던 거여. 백호등에 다녀왔다는 징표로 말목을 박은다고 박았는디 말목을 지를 때 도포자락이 딸려 들어가서 말뚝하고 같이 박혀 부렀던 것이제. 그러니 일어서서 갈려고 할 때 도포자락이 안 떨어지는 것이었제. 그 양반은 그것도 모르고 귀신타령 하다가 혼비백산하여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어사둠벙

도갑사 가는 길 개울가에 큰 바우가 세워져 있었어. 깎아 세운 듯한 사각 진 큰 바위가 있었어. 그 아래로도 널따란 바위가 쭉 이어져 있고. 둠벙이 아주 깊었제. 우리 동네 애기들 물놀이장이었제. 조무래기 아이들은 좀 더 얕은데서 놀고. 옛날에 한 어사양반이 여그로 낚시를 왔는 모양이여. 그란디 물이 하도 맑고 깨끗하니 좋으니께 수영을 했나 보더라고. 그러다가 발이 헛디뎌서 죽어서 어사둠벙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어. 

또 이곳에서 한 어사가 낚시를 했는데 사람만한 크기의 잉어가 걸려서 그 물고기 힘을 못 이겨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서 죽었다는 전설도 있어.

아무튼, 그 큰 바우를 어사바우라 불렀제. 우리들 어렸을 때는 그 우에 올라가서 다이빙을 많이 했제. 때락 큰 바우라 올라가면 상당히 높제. 물이 깊은께 다이빙을 해도 안 다쳤어. 이웃 동네 사람들도 이곳에서 멱을 많이 감았제. 지금은 세워진 어사바우는 깨져버리고 없고, 어사둠벙만 남아 있는 것이제. 도갑저수지 막음시로 그 바위를 깨부렀제. 그 바위를 안 깨고 살려놨어야 한디 말이여.

무재등과 기우제

어사둠벙 위 쩌그 산에 무재등이라는 큰 바위하고 봉화대가 하나 있었어. 갑작스런 일이 있으면 연기를 피워 올려 신호를 보내는 것이제. 그란디 비가 여러 날 오지 않으면 기우제도 지내고 산제도 지냈다고 해. 날이 하도 가물어 싸니까 주민들이 걱정이 많제. 이렇게 날이 가물면 동네 주민들이 이장한테 난리였제. ‘아 이장이 동네에서 뭐하는 사람이냐? 이렇게 가문디 먼 조치를 취해야제.’ 말이 많았제. 그래가꼬 이장이 총 지휘를 해서 기우제를 지냈제. 나 어렸을 때 애기 돼지도 데려갔던 기억이 나. 무재등에 돼지머리도 올리고, 피를 뿌리기도 했어. 무재등 바우에다 피를 뿌려부러. 바우가 돼지피로 더러워질 것 아니여? 그라믄 그 피를 씻은다고 비가 오제. 하늘은 바우가 더러운 꼴을 못 본께 비를 내려서 깨끗하게 씻어부는 것이제.

“그렇게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가요?”아 그렇제. 비가 오제. 무재등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빗방울이 떨어졌어. 분명히 비가 내렸어.

<계속>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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