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61)
■ 도갑리1구 죽정마을(1)

평리와 죽정 갈림길 벚꽃 가로수 사이로 바라본 죽정마을의 봄 풍경 
평리와 죽정 갈림길 벚꽃 가로수 사이로 바라본 죽정마을의 봄 풍경 

평리마을을 떠나 죽정마을로 발걸음을 향한다. 동쪽 월출산 방향으로 배롱나무 길을 따라 약 1km를 걷다 보면 벚나무 가로수 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월출산 도갑사 방향으로 한 걸음만 걸으면 도갑리 1구 죽정마을로 접어들게 된다.

죽정(竹亭)마을은 도갑리 1구로 동구(洞口), 양지(陽地)마을, 음지(陰地)마을, 선인동(仙人洞)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동구에 백제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찰 도갑사(道岬寺 수남사)를 비롯하여 여러 암자 터가 있으며, 월대바위 아래에는 1832년 대동계에서 성기동에서 이전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한 문산재(文山齌)와 양사재(養士齌), 두 서재(書齋)가 있다. 선인동 큰길 가에는 삼효문(三孝門)이 서 있다.

안내판에 새겨진 지명 유래

죽정마을회관 입구에는 마을지도를 그려놓은 안내판이 한 개 우뚝 서 있다. 안내판 오른편에는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해 놓은 글이 새겨져 있다. 외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읽어보고 죽정마을의 윤곽을 대략 그려볼 것이라 짐작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림이 양쪽으로 우거졌고 정자나무가 둘러쳐져 있는 죽정마을은 음지(陰地)마을, 양지(陽地)마을, 선인동, 동구(洞口)로 이루어졌다. 선사시대의 유적지 고인돌이 마을 여기저기에 널려 있고, 장수 발자국, 월대암, 문산재, 보살할매집터, 국장생, 안평대군의 묘 터인 안주머리 등 1,000여 년 전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특히 우리 마을은 조선조 성종 때 오한 박성건(1418~14780) 선생의 제자와 유림들이 1681년 오한 선생을 기려 죽정마을에 죽정서원을 건립하여 이 마을을 ‘웃사우’라고도 하였고, 서구림 신흥동에 사우가 있어 신흥동 마을을 ‘아랫사우’라고도 하였다. 죽정서원 바로 앞에 하마석이 있었고 마을 밖 사거리에 홍살문이 있어 이곳 사거리를 ‘홍살밖’이라고 부른다. 죽정마을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불러 졌는지 그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자나무가 많고 죽림이 음지마을과 양지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죽정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필자는 2017년 여름에 그 당시 84세로 죽정마을 노인회장이셨던 최홍 어르신을 만나 마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청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다음은 그때 기록한 내용이다. 

봉바우와 황바우

“우리 동네 이름이 왜 죽정(竹亭)이냐? 우리 마을에 옛날에 대나무가 많았다요. 지금은 별로 없지만요. 저 산에 봉황이 있어요. 왜 봉황새라고 있잖아요? 수컷을 봉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이라고 하는디, 마을 이짝저짝 산에 봉바우, 황바우가 있제라. 전설에 의하면 봉황새는 오동나무에 깃들어 살면서 대나무 열매, 즉 죽실이 아니면 먹지를 않으니께 죽정이라고 했다요. 산봉우리 네 개를 가운데 두고 요짝은 봉바우, 저짝은 황바우가 있다요. 현재는 봉바우를 부엉바우라고도 하제라. 그라고 쩌그 문산재 위 월대암이 황바우에 해당되제라. 구림의 지형을 봉황 형국이라고 그러지라. 지금의 구림초등학교 자리는 황산에 해당되고, 구림교회 뽀짝 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곳이 알묏들, 당산이제라. 황은 암컷을 말하는 것이니 황의 알뫼, 즉 난산인 것이제라. 저 알바우는 신성시해서 아무도 못 건들어, 건들면 큰일 나불제. 그래서 저 황산 둘레에 경계를 쫘악 둘러놨제. 황산과 난산을 잘 보호해야 마을에 평안과 만복이 깃든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제라.
그라고 황은 암컷이라 꼬리가 짧아서 상대포에서 끝나는데 그곳에 있는 바위를 할미정이라고 하제라. 지금은 할미교라는 다리가 생겼지라. 수컷인 봉은 배가 없는 대신에 꼬리가 길어서 양장마을까지 뻗쳐있다고 보제라. 옛날부터 어르신들 말에 의하면 구림마을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동네라고 그럽디다.”

최기욱 훈장님과의 만남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죽정마을에 거주하고 계시는 최기욱 훈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뵙기를 청했다. 먼저 마을회관 입구 안내판에 나오는 마을 지명 유래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조금 고쳐야 할 내용이 있어서 수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마을 원로들과 함께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으니 그것에 근거해서 글을 쓰라고 충고하셨다. 참으로 귀한 자료를 얻어 기쁘기 그지없었다. 다음은 최기욱 훈장이 제공한 자료에 기초한 죽정마을 지명 유래이다.

“마을이 이루어진 연대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수박등과 선인동에 고인돌이 여러 기(基)가 있으며 옛 기와 조각과 댓돌들이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풍수설에 의하면 죽정마을 동남쪽에 봉(鳳)바위와 죽순봉(竹筍峯)이 도갑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봉바위는 봉(鳳)으로 구림천 북쪽 등성이로 꼬리가 양장까지 이어지고 죽순봉은 황(凰)으로 남송정 할미정이 끝이다. ‘봉황(鳳凰)은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하여 산 아랫마을을 죽정(竹亭)이라 하였다고 하며 마을 주위에 대나무 숲이 많다. 죽정마을의 구성(構成)은 동구(洞口), 양지(陽地)마을, 음지(陰地)마을, 선인동(仙人洞)으로 이루어졌으며 함양박씨(咸陽朴氏), 낭주최씨(朗州崔氏), 전주최씨(全州崔氏), 김해김씨(金海金氏)외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도갑산 주산등 밑 와우(臥牛) 형국에 도갑사(道岬寺: 水南寺)가 있으며, 그에 따른 암자(庵子)터가 산골짜기 마다 널려 있고 석성(石城)터와 국장생(國長生)이 있으며 월대암(月臺岩) 아래 문산재(文山齋)와 양사재(養士齋)가 있고 음지마을에 함양박씨 오한공 선생(五恨公)을 모시던 죽정서원(竹亭書院)터와 과거에 창녕 조씨와 광산 김씨가 살았던 안용당(安用堂)이 있으며, 선인동에는 선인무수(仙人舞袖) 형국의 명당(明堂)이라 하여 김해김씨의 묘소와 삼효문(三孝門), 고인돌, 안주머리 들판(농지)등이 있다.”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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