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산 초입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 마을 뒤로 마봉(馬峯)이라고 부르는 작은 봉오리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마을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신마산 초입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 마을 뒤로 마봉(馬峯)이라고 부르는 작은 봉오리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마을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신마산 마을의 지명 유래

신마산 마을은 마산리1구인 오산마을에 이어 마산리2구에 속한다. 오산마을 서쪽, 낙안마을 동쪽에 생긴 새로운 마을이다. 19세기 말에 시종면 신학리에서 살던 평산신씨(平山申氏)인 신명삼(申明三)이 천석궁 터를 보고 처음 뒷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나중에 원마산에서 살던 주민들도 농지를 따라 이주해와 마을이 새롭게 형성되었다고 해서 마산(馬山)에 새로울 신(新)자를 써서 신마산(新馬山)이라 했다. 그 후 평택임씨(平澤林氏)인 임두봉(林斗奉)이 들어왔으며 김씨, 오씨, 조씨 등 여러 성씨가 입촌하여 모여 살고 있다.

마을 뒤에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마봉이라고 부른다. 신마산(新馬山)마을은 신마산들이라고 부르는 너른 들녘을 지니고 있어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현재 마을주민들은 편의상 우대미(윗쪽마을)와 아래대미(아래쪽마을)로 구분해서 칭하며 생활하고 있다.
 
배산임수 반월형국의 명당 터

신마산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는 배산임수(背山林水)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 뒤에는 마봉(馬峰)이 있고, 마을 앞에는 호동천이 신마산들을 적시며 영암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영암천은 서호면 황촌마을 앞에서 서호강으로 알려진 학산천을 품어 안으며 영산강에 합류한다. 주민들은 호동천보다는 월산천, 오목천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마을 앞 시내를 건너면 성지촌마을로 이어진다. 이 다리를 마산교라고 부른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신마산은 풍수 용어로 반월(半月) 형국에 해당한다. 반월이란 말 그대로 반달을 의미한다. 뒷산을 배경으로 반달 모양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서 생긴 말인 것 같다. 풍수지리에서는 운중반월(雲中半月)형국을 최고로 치는데, 이 반월형국이 진짜 명당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달은 물에 비쳤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리라. 

우리 영암에서는 이 운중반월 형국과 물에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온다. 서호면 엄길리 산소마을에 있는 반남박씨 선산에 대한 이야기다.

엄길마을 앞에 학파제1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일명 십리방죽으로 알려져 있는 영암에서는 제일 큰 저수지다.

반남박씨 종중에서는 이 저수지가 조성된 과정에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고 말한다. 산소마을 어귀에 자리한 반남박씨 선산은 풍수 용어로 말하자면 운중반월(雲中半月) 형국의 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운중반월은 말 그대로 ‘구름 속에 반달이 뜬 모양’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운중반월의 형국은 물이 있어야 명당으로서의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학산면 광암마을 출신의 현준호가 성재리와 신기동 사이에 둑을 막아 간척사업을 하려고 하자 반남박씨 문중에서 격렬하게 반대를 했다. 이유는 풍수지리상으로 선산 앞에 물이 있어야 하는데 제방을 쌓아 간척지를 만들면 더 이상 강물이 들어오지 않아 명당으로서의 기운이 다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박영효란 분이 중재하여 제방을 막는 대신 묘소 아래에 큰 저수지를 조성하도록 했다. 현준호는 박영효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지금의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가뭄에 대비한 저수지도 필요했으리라.

신마산 마을의 달밤

영산강 하구언이 생기기 전의 신마산 마을 풍경을 그려보았다. 고즈넉한 여름 저녁, 마을 뒷산 마봉 위로 반달이 뜬다. 어스름 저녁 모래사장 넓게 펼쳐진 오목천 하류 강물 위로 반달이 비쳐 어른거린다. 철썩이는 파도 물결을 따라 마봉 반달도 노를 저어 먼바다로 나아간다. 모래사장 저 너머 갈대밭 언저리에서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 사랑을 속삭이는 동네 처녀·총각들의 사랑 노래가 흘러나온다. 신마산의 여름밤은 달빛 희미해지며 샛별이 뜰 때까지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인하여 잠 못이루고, 동네 사람들은 달빛 은은하게 비치는 들녘에서 들려오는 나락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으리라. 

/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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