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56)
낙안촌(2)

낙안촌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건넷말’풍경. 마을 서쪽에 있으며 옛날에 바닷가에 가장 근접한 마을이었다. 월출산이 잘 보이는 유선각이 있으며 그 곁에는 공동우물이 있었다. 건넷말 서쪽에 제법 큰 제방이 있는데 그 너머로 펼쳐진 평야는 영산호가 생기기 전 광활한 갯벌이었다.
낙안촌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건넷말’풍경. 마을 서쪽에 있으며 옛날에 바닷가에 가장 근접한 마을이었다. 월출산이 잘 보이는 유선각이 있으며 그 곁에는 공동우물이 있었다. 건넷말 서쪽에 제법 큰 제방이 있는데 그 너머로 펼쳐진 평야는 영산호가 생기기 전 광활한 갯벌이었다.

평사낙안(平沙落雁) 형국의 낙안촌은 남쪽에 오목천(五木川)이라고 부르는 제법 큰 하천이 있다. 주변에 나무가 다섯 그루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오목천 근처에 마을이 있었는데 6·25 때 없어졌다고 한다. 영산강 하구언이 생기기 전에는 오목내 주변에 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여름이면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몰려 왔다고 한다. 이 오목천 하류는 군서면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이었으리라. 

낙안마을에서 가장 바닷가 가까이에 자리한 ‘건넷말’마을은 큰 개용(수로)이 있어서 작은 여객선이 출입하였고 목포로 가고자 하는 주민들이 애용했다. 동네 처녀들은 무리를 지어 오가리를 강물에 둥둥 띄어놓고 맛과 조개를 잡느라 분주했고, 청년들은 민물과 짠 강물이 만나는 하천 하류에서 실뱀장어를 잡기 위해 밤늦게까지 손전등을 켜고 모기장 그물을 쳤다. 

낙안촌을 떠나며

40년 전만 해도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조수를 타고 철썩거렸다. 어디 이 마을뿐이었겠는가? 영암 고을 대부분 지역이 바닷가였다.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동네 꼬마들은 강가에 가서 굴도 따고 멱도 감으며 진흙 마사지를 하면서 놀았다. 주민들은 조개, 맛, 대가니, 게, 낙지와 같은 해산물을 잡아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샀다. 그 당시 서울 명동 낙지집에는 '영암 낙지'라는 상호를 걸고 장사를 했을 정도로 영암 낙지가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미암 문수포 세발낙지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영산강 간척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천혜의 갯벌을 잃고 말았다. 

당시에는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서 갯벌보다는 농지가 환영받는 풍토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지금 세발낙지 한 마리당 일 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지경이다. 한 마리당 일 만원이면 정말 금값이나 마찬가지다. 쌀 값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가격이다. 그런데 이제 미암 주민들은 갯벌이 사라진 관계로 더 이상 세발낙지를 잡을 수가 없다. 인근 지역인 무안과 신안에서 들여오고 있는 실정이다.

영산강 하구언을 만들어 갯벌을 없애는 대신 많은 농토를 얻긴 했지만, 엄청난 안개가 발생하여 농작물의 생육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 특히 삼호는 한때 우리나라 무화과의 80%를 생산해내기도 했으나 영산호가 생긴 후 수확량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또 영암의 특산품 중에 '어란'이라는 상품이 있는데 옛날에는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어란은 숭어 알을 재료 삼아 만든다. 그 맛이 독특하고 별나서 지금도 아는 사람들은 이 어란을 많이 찾는다. 숭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강어귀에 사는 물고기인데 특히 영암의 영산강 숭어 맛이 전국에서 최고로 알아줬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산강 갯벌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갯벌이 사라지면서 영암 어란의 명성도 많이 퇴색하고 말았다. 

현재 인근 지역인 무안, 함평, 신안 등지에서는 갯벌을 관광 상품화하여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쌀과 잡곡 이외에 별다른 생산시설이 없는 농촌에서는 무공해산업이자 친환경산업인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볼 때, 영암이 영산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갯벌을 잃어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갯벌을 간척하여 농토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새만금 간척지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광활한 농토 위에 수백만 평 규모의 태양광 시설이 들어올지 모른다고 하니 정신이 아찔하다. 

환경보존의 중요성 직시해야

지금 지구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그로 말미암은 급격한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마존강 유역의 밀림 파괴와 아프리카와 중국의 사막화, 빙하가 녹음으로써 생긴 해수면의 상승, 오존층의 파괴는 지구의 환경을 위협하며 기상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인간들의 탐욕과 무지가 겹쳐 온갖 지하자원을 약탈하여 고갈시키고 있고, 강대국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각종 신무기를 개발하여 힘없는 나라에다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지구의 피부는 폭탄을 맞아 터지고 갈라졌다. 지하자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인간들은 굴착기를 동원하여 지구의 피부를 뚫고 지구의 심장 부근까지 접근해서 흡혈귀처럼 석유를 빨아먹고 있다. 참으로 지구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족속은 암세포와 다름없다.

사람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기계를 발명하여 문명사회를 이루는가 싶더니,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자연에 대한 겸손을 잊어버리고 오만과 자만에 가득 차 자연과 환경을 제멋대로 조종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들은 이제 기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거대한 꿈까지 꾸고 있다. 그 첫 단계로 세계 각국은 십 만개 이상의 관측소를 설치하고 또 수많은 위성을 이용하여 족히 40억 평방 마일에 이르는 대기를 관측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었다. 

일기예보는 이제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큰 행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기후와 날씨를 확인한다. 그러나 자연은 이를 비웃기나 하듯 전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를 만들어 한파와 가뭄과 홍수와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 동안 가뭄과 홍수로 극심한 피해를 당했다. 그래도 그때뿐, 사람들은 곧 잊어버린다.

기후를 지배한다거나 또는 완벽하게 이해하여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한 착각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인간이 기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의 동남풍, 콜럼버스의 항해, 스페인의 무적함대 패배,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패배, 1944년 노르망디에서의 연합군 작전과 같은 인류 역사상 큰 획을 그었던 대사건들은 그 성패가 모두 기후의 영향력에 달려있었다. 러시아의 혹한 때문에 패퇴를 계속하다가 워터루의 비로 인하여 완패한 나폴레옹의 상황을 분석한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약간의 기후변화만으로도 하나의 제국(帝國)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하다.”

기계문명의 정점에 선 지금, 이제 인간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환경주의자들이 주장한 대로 멸망의 위기로 가느냐, 아니면 다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되찾아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글/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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