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 불두의 발제선과 광배에 나 있는 구멍이 특이하다.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 불두의 발제선과 광배에 나 있는 구멍이 특이하다.
용암사 마애불의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인상(印相).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인상이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크게 유행하던 양식이라고 한다. 사진 하단 왼쪽에 조그마한 상이 하나 조각되어 있다. 발원자 또는 선재동자로 볼 수 있다.
용암사 마애불의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인상(印相).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인상이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크게 유행하던 양식이라고 한다. 사진 하단 왼쪽에 조그마한 상이 하나 조각되어 있다. 발원자 또는 선재동자로 볼 수 있다.
월곡리 몽령암터 마애불 / 용암사지(龍巖寺址) 마애불(국보 제144호)이 위치한 구정봉과 마주하며 직선거리로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9호인 월곡리 마애불은 규모로 보나 완성도로 보나, 용암사지 마애불보다 한 등급 아래로 평가받는다. 전체 높이는 490㎝, 좌상 높이는 430㎝이다.
월곡리 몽령암터 마애불 / 용암사지(龍巖寺址) 마애불(국보 제144호)이 위치한 구정봉과 마주하며 직선거리로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9호인 월곡리 마애불은 규모로 보나 완성도로 보나, 용암사지 마애불보다 한 등급 아래로 평가받는다. 전체 높이는 490㎝, 좌상 높이는 430㎝이다.

 

용암사지 마애불, 9개 구멍의 실체

​용암사지 마애불 불두의 발제선(이마와 머리카락이 자라는 경계선)을 따라 수평으로 난 7개의 작은 구멍과 광배에 나 있는 동일한 직경의 두 구멍은 왜 뚫려있는 것일까? 마애불 불두를 확대한 아래 사진을 자세히 관찰해 보자.(사진출처: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구멍들을 마애불의 머리에 보관(寶冠)을 덧씌웠던 흔적일 것으로 짐작한다. “도솔천은 보관(寶冠)·칠보(七寶)·광명(光明)·연화(蓮華) 등으로 장엄(莊嚴)(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되어 있다.”고 미륵삼부경에 나와 있는데 조성 당시에 이 미륵불 불두에 보배로운 관을 씌우기 위해 구멍을 뚫었던 것 같다. 보관을 고정하기 위해서 그리했으리라. 요즘 같으면 드릴로 구멍을 뚫고 큰 나사못이나 볼트를 체결했을 것이다.

용암사지 마애불은 도솔암 미륵불

지난호에서 언급했듯이 마애불 인근에서 ‘신미용암사도솔□(辛未龍嵒寺兜率□)’명 기와가 발견되었고, 이 도솔은 미륵이 주재하는 도솔천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자는 기와에 새겨진 이름으로 보아 이곳이 용암사 도솔암 암자가 있었던 자리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용암사가 거느린 암자 이름이 도솔암이었을 거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판단해 보건데 국보 144호로 지정된 월출산 구정봉 마애불은 미륵불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이주민 문화재감정위원은 용암사지 마애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 여래의 가사를 입고 머리에 보관이 표현된 것은 처음 수기시(授記時)에 석존의 금란가사를 받고 뒷날 도솔천에서 하생(下生)하여 성불한 뒤에 대가섭존자로부터 석존의 가사를 받는다는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의 내용을 의식해 제작한 미륵불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월출산 마애불좌상은 보관을 썼지만 대의(大衣)를 입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한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애불 무릎 옆에는 손에 지물을 들고 높이 87cm 가량 되는 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상은 발원자일 가능성이 있으나, 선지식을 찾아 구법 여행을 하는 선재동자로 볼 수도 있다. 즉 미륵을 만나 법을 구하는 극적인 순간이 월출산 구정봉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한민국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부처님이다. 높이가 8.6m에 달한다. 얼굴이 두텁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으며 두 눈은 일자로 크게 그려져 있다. 서탑에 기대어 멀리서 바라볼 때와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때와 느낌이 매우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적으로 후덕한 인상을 준다. 마애불은 서쪽의 노적봉을 바라보고 있는데, 노적봉 아래에는 월곡리 마애불이 용암사지 마애불을 마주보고 있다. 

월곡리 몽령암터 마애불

월곡리 마애여래좌상은 호동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약 3km 정도 올라간 위치에 있다. 마을 주민들은 불상이 있는 곳으로 통하는 계곡을 ‘선황골’ 또는 ‘서낭골’이라 부른다. 마애불 곁에 암자터가 있는데 주민들은 ‘몽연암’터라고 부른다. 실제 옛 문헌에 ‘몽령암’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656년에 유형원(柳馨遠1622~1673)이 편찬한 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에 있는 ‘몽령암구재월출산’(夢靈庵俱在月出山)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몽령암이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몽연암으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요즘 사람들은 녹암마을 대동저수지에서 출발하여 시리봉을 지나 노적봉을 통과하여 미왕재 억새밭으로 통하는 좁은 산길을 택하여 월곡리 마애불을 친견하러 온다. 필자가 답사를 갔을 때도 꽤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하고 있었다. 영암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알려진 월출산의 숨은 명소다. 

월곡리 마애불의 형태

“영암 월곡리 마애 여래 좌상은 표정과 자세가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의 영향을 느끼게 하나 다소 평면적이다.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 뼈가 솟아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낮고 귀가 분명하게 크다. 눈매가 길고 입술이 두툼하다. 목에 세 줄기 주름(삼도, 三道)이 있고 가슴의 양감(量感,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부피감)이 적다. 

법의는 편단우견(偏袒右肩, 불교에서 상대편에게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법의 하나.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냄)으로 입었는데 한 번 접혀서 어깨로 넘어갔다. 옷 주름은 상체와 하체가 대조적인 사선으로 표현되었다. 수인은 오른손이 선정인, 왼손은 촉지인(觸地印, 왼손은 주먹을 쥐어 배꼽 위에 대고 오른손은 펴서 땅으로 드리우면서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는 모양의 인상(印相).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수행할 때에 지신(地神)을 깨우쳐 증명한 것을 뜻한다)을 취한다. 결가부좌 한 다리는 수평으로 있다. 

불상의 자리를 둘러 연꽃잎 7엽이 새겨져 대좌(臺座)를 이룬다. 광배(光背)는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에 형식화된 불꽃무늬가 에둘러 새겨져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계속>
글/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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