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에 18기의 미륵불이 조성된 것으로 전해져

노적봉 아래 월곡리 마애불 전경
노적봉 아래 월곡리 마애불 전경
용암사지 마애불과 도솔천 월출산 구정봉 아래 용암사지 마애불은 높이가 8.6m에 달한다. 화강암 절벽에 고부조(高浮彫)(부조한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조각되어 정면에서 보면 마치 환조상(丸彫像)(한 덩어리의 재료에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낸 작품)을 보는 듯한 입체감이 느껴진다. 
용암사지 마애불과 도솔천 월출산 구정봉 아래 용암사지 마애불은 높이가 8.6m에 달한다. 화강암 절벽에 고부조(高浮彫)(부조한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조각되어 정면에서 보면 마치 환조상(丸彫像)(한 덩어리의 재료에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낸 작품)을 보는 듯한 입체감이 느껴진다. 

용암사 마애불과 월곡리 마애불 

어렵게 도착하여 친견한 월곡리 마애불을 보니 자연스럽게 구정봉 용암사지 마애불이 생각난다. 용암사 마애불은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2.5km 떨어져 있는데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설화에 따르면 동시에 그리기 시합을 했다고 하는데 전문가들 의견은 다르다. 용암사 마애불이 먼저고 월곡리 마애불은 그보다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마애석불(磨崖石佛)이란? 

마애석불(마애불)은 말 그대로 ‘벼랑부처’란 뜻이다. 바위산에 석굴을 파서 승원을 짓거나 탑당을 세우는 일은 원래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으로 전래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이미 이러한 석굴사원의 조영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바위는 성질이 무른 사암이나 석회암보다는 단단한 화강암이 대부분이어서 바위굴을 파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바위 위에 양각(또는 음각)을 하여 불상을 표현하는 법을 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유행했으며 그 규모도 대형화되었다. 

영암 월출산에만 해도 회문리 구정봉 용암사 마애불, 월곡리 노적봉 마애불, 칠치폭포 아래 마애불, 문산재 월대암 아래 마애불 등 곳곳에 여러 기가 조성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월출산에 18기의 미륵불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전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 중에서 용암사 마애불과 월곡리 마애불 두 개가 가장 규모가 크다. 두 마애불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구정봉 용암사 마애불을 다시 한 번 조명해보기로 한다. 작년 봄에 회문리 편에서 용암사지 마애여래좌상에 대해 독자들에게 알린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보다 더 상세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구정봉 용암사지 마애불 인근에서는 ‘통화이십오년정미(統和二十五年丁未)’명 기와가 수습되었다. 통화 25년은 1007년으로 마애불을 조성한 연대가 최소한  이 때거나 그 이전일 것이다. 또한 ‘신미용암사도솔□(辛未龍嵒寺兜率□)’명 기와도 발견되었는데, 용암사의 용(龍)과 도솔(兜率)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유독 눈길이 간다. 

잘 알다시피, 도솔천은 육욕천의 네 번째 하늘로 미륵보살이 사는 곳이다. 범어 투시타(Tusita)의 음역으로서, 의역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內院宮)이라고 부른다. 미륵하생경에 의하면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보살이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하여 성불(成佛)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외원은 천상의 대중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내원암, 지족암, 도솔암 등의 암자 이름은 모두 여기에서 유래한다.

용화법회, 미륵신앙, 그리고 매향비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도탄에 빠져 신음하던 민중들은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용화회상(龍華會上)에서 설법하는 자리에 참여하여 구원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른바 미륵신앙이다. 불교 경전인 미륵하생경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 내려와 세 차례의 용화법회를 열어 많은 중생들을 구제한다. 미륵불은 첫 법회에서 96억, 두 번째 법회에서는 94억, 세 번째 법회에서는 92억의 사람을 제도한다고 한다. 

엄길마을 암각매향명에도 용화초회(龍華初會)라는 말이 나온다. 매향(埋香)의식을 치르고 매향비를 세우던 사람들은 바로 이 미륵의 용화법회에 참가하여 묻었던 향나무를 꺼내어 향을 사르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다. 우리 영암에는 구림 신흥동 정원명석비, 서호 엄길 매향암각문, 미암 채지리 매향비 등이 미륵신앙을 말해주는 유물로 남아 있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아홉 가지 인연

“도솔천은 보관(寶冠)·칠보(七寶)·광명(光明)·연화(蓮華) 등으로 장엄되어 있고, 자연히 생긴 악기에서 십선(十善)과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설하는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고 한다. 천인들은 이 음악소리를 듣고 높은 깨달음을 얻고자 발원한다. 신라의 원효(元曉) 등은 불경을 근거로 하여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아홉 가지 인연을 들고 있다.

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여러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경전을 독송하는 자, 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8계(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편, 용암사지 마애불의 불두(佛頭)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마와 머리카락이 자라는 경계선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7개다. 또한 광배(光背)[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원광]에도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한 개씩 동일한 구멍이 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계속>
글/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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