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41)
군서면 월곡3구 호동마을 (6)

노적봉과 월출산  / 월곡리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노적봉 쪽에서 바라본 월출산 전경
노적봉과 월출산  / 월곡리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노적봉 쪽에서 바라본 월출산 전경

김광열 위원장은 체험관 마당에서 월출산을 가르키며 호동마을의 풍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월출산은 내산(內山)과 외산(外山)으로 나누어집니다. 호동마을을 중심으로 놓고 본다면 범바우-시루봉-노적봉-죽정마을로 이어지는 능선이 내산에 속하고 천황봉-구정봉-미왕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외산에 속합니다. 우리 호동마을은 호랑이 형상을 한 뒷산이 우람한 기상을 내뿜으며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형국이지요. 저기 보이는 능선이 호랑이 등입니다. 그리고 노적봉 못 가서 우뚝 솟은 봉우리가 호랑이 머리에 해당합니다. 호랑이 꼬리는 마을을 길게 감싸 안으며 벚꽃 가로수길까지 연결되지요. 개신리 범은 잠자는 범입니다. 그런데 우리 호동마을 범은 아주 기상이 넘치는 범이지요. 저 시루봉을 향해 고개를 번쩍 쳐들고 있는 범 머리를 보십시오. 우리는 저 봉우리를 작은 시루봉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노적봉은 용 머리에 해당합니다. 저 용은 죽정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청룡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여의주를 탐하고 있습니다. 그 여의주는 바로 시루봉입니다. 그러니까 호동마을의 범과 죽정마을에서 시작된 청룡이 여의주(시루봉)을 가운데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형국이지요.”

김광열 위원장의 말을 듣고 나서 월출산 내산의 능선을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용쟁호투의 형국이 눈에 들어온다. 범의 머리에 해당하는 작은 시루봉(범바우)과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노적봉 사이에 여의주에 해당하는 시루봉이 있다. 옛 어른들이 주변 지형을 이해하는 방식이 참 흥미롭다.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이 전국 방방곡곡 마을 마을마다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월곡리 마애불에서 바라본 월출산. 구정봉 아래 능선 상부에 용암사지 마애불이 있다.
월곡리 마애불에서 바라본 월출산. 구정봉 아래 능선 상부에 용암사지 마애불이 있다.

월곡리 마애불

김 위원장께 월곡리 마애불의 위치를 물었더니 호랑이 능선을 넘어 호동골 계곡을 타고 노적봉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가는 길이 쉽지 않다고 하면서도 초입까지 안내를 해주셨다. 용암사지 마애불은 여러 차례 가보았으나 월곡리 마애불은 말만 들었지 처음 가는 길이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서 길 찾기가 힘든 데다가 곳곳에 가시덤불이 무성하여 답사를 방해했다. 가시에 찔려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길을 더듬어 나갔다. 호랑이 등 능선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니 물이 말라버린 계곡이 하나 나왔다. 바로 호동골 계곡이다. 이 계곡은 주암마을과 호동마을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주민들은 서낭골이라고 부른다. 비가 와야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인데 크고 작은 바위며, 계곡 옆에 식생하는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 잘 어울려 제법 운치가 있다. 바위 위에 서서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니 동백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빨간색 천이 반짝하고 눈에 띈다.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등산로 표식임이 틀림없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저 조그마한 천 조각 하나가 주는 위로와 기쁨의 크기는 가늠하기 어렵다. 

빨간 리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참나무와 동백나무가 무성한 숲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걷다 보니 점점 하늘이 가까워진다. 능선에 다다랐다는 증거이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 정상에 이르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동쪽으로 천황봉과 구정봉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광활한 영암 평야와 영산강이 굽어 보였다. 바로 오른편에 거대한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바로 노적봉이다. 이 노적봉 동편 가슴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노적봉 아래 기슭을 따라 잠시 돌아가야 한다. 보물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노적봉 베틀굴
노적봉 베틀굴

노적봉 발 아래를 지나다보면 꽤 큰 동굴을 하나 마주치게 된다. 주암마을과 호동마을 주민들은 이 굴을 베틀굴이라고 부른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크다. 옛 선비들의 월출산 산행기를 보면 금저굴이 있고 그 동굴 속에서 도인이 살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바로 이 베틀굴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영험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한 짓 같다. 국립공원 내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설사 어떤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뒷마무리를 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 도대체 이 심란하게 널부러진 쓰레기를 누가 치운단 말인가.

동굴 입구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구정봉 어깨 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상부 능선에 있는 커다란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저곳이 용암사지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이다. 용암사 마애불과 노적봉 마애불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 한 토막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다. 

구정봉 석불과 선황골 석불 그리기 시합

주암마을 주민 박영열(남 70세) 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술한다.

“주암마을하고 호동마을 사이에 선황골이라는 곳이 있지요. 지금 공들이는 장소이지라. 그 선황골 위쪽에 베틀굴이 하나 있어요. 베틀굴 바위에 어마어마하게 큰 석불이 그려져 있지라. 엄청 커요. 높이가 한 10미터는 될 것이요. 그란디 그 베틀굴하고 구정봉 석불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요. 구정봉 석불은 완성이 되었는데 여기 선황골 베틀굴 석불은 미완성이지라. 그리다 만 것처럼 생겼제. 왜 그렇게 미완성이 되었을까 궁금해서 어른들한테 여쭤봤지요. 어른들한테 듣기로는 선황봉 베틀굴 석불하고 구정봉 아래 석불하고 누가 먼저 그리는지 시합을 했다고 해요. 누구든지 먼저 그리면 남은 사람은 그만 그리기로 했다요. 하루 동안 석불을 그리는데 누가 먼저 완성하느냐 하는 거제. 그란디 구정봉 석불이 먼저 완성되었다는 메아리가 울리니, 여기 석불은 그것으로 끝나버렸다는 거지요. 한쪽이 먼저 그림을 완성하면 남은 쪽은 그만 그리기로 한 약속 때문이지라. 구정봉과 여그 베틀굴이 딱 마주 보고 있다요. 선황골 베틀굴에서 악을 쓰면 서로가 울리기 땜에, 메아리가 쳐서 구정봉까지 간다요. 구정봉에서 다 그렸다는 소리가 선황골에 메아리치면서 시합은 끝나분 것이제라. 그 구정봉 석불이 바로 국보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이요. 여그 선황골 베틀굴은 찾기도 힘들어요. 얼른 못 찾아요. 고개길 밑에 있어서 걷다가 그냥 지나쳐불기 쉽제라. 옛날에 거그서 베를 짰다고 해서 베틀굴이요. 6.25때 피난민들이 이곳에 숨기도 했다고 그러대요. 굴은 겨우 베를 짤 수 있을 정도로 크기도 작은데 신기할 정도로 물방울이 계속 떨어집니다. 물이 시간 맞춰 한 방울씩 떨어져요. 똑딱똑딱하고.”
       
<계속>
글/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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