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 (28)
■군서면 원마산(元馬山) 마을

원마산마을 전경 / 10여 가구가 거주하는 원마산 마을은 산속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볼수록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안겨준다.
원마산마을 전경 / 10여 가구가 거주하는 원마산 마을은 산속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볼수록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안겨준다.

영암고을의 가을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월출산 벚꽃 백 리 길 벚나무 가로수들도 모두 잎을 떨구고 나신을 드러내고 있고 들녘엔 촌로들의 흰 머리카락을 닮은 허연 억새꽃들만 쉴새 없이 앞뒤로 흔들거리고 있다. 오산마을에서 원마산으로 넘어가는 언덕 부치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 쪽으로 갈까? 벚꽃 백 리 길에 인접한 마을을 계속 답사하기 위해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갈까, 아니면 예정엔 없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신덕정마을까지 더 가볼까?

선택의 기로에서

길을 걷다 보면 도중에 여러 개의 길을 만나게 된다. 목적지까지 외길로만 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삼거리도 네거리도 있고 오거리도 있다. 큰길도 있고 작은 길도 있으며 지름길도 있고 우회길도 있다. 평지길도 있고 언덕길도 있으며 큰길에 붙어 있는 샛길도 있다. 앞에 나 있는 여러 갈래 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가 많다. 이 지점에서 누구나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느냐에 따라서 삶의 형태와 질이 달라진다. 이럴 때 즐겨 읽는 시 한 편이 있다. 미국 출신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글이다. 그는 갈림길에서 맞닥뜨려야 할 선택의 어려움과 번민에 대하여 ‘가지 않은 길’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노란 단풍 숲속으로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길이 굽어진 시야 끝까지
오랫동안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은 풀이 무성하고 사람이 걸은 흔적이 적어
더 나은 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같은 길이 되겠지만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하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샛길을 걷는 즐거움

프로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길을 선택해 걸었다. 그로 인해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가 쓴 시를 자세히 음미해보면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서 후회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남이 설계해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에 더 중요성을 부여한 것 같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인생길에 프로스트의 시에서처럼 두 갈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 갈래 네 갈래 열 갈래 길이 한 굽이 한 굽이 돌아가는 곳마다 기다리고 있다. 선택 또한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며, 갈림길에 이를 때마다 수없이 많은 갈등과 번민을 강요한다. 선택은 과정의 연속선 상에 접하는 접점에 불과하다. 한 번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가다가 돌아오거나 처음 계획했던 여정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드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샛길에 관심이 많다. 고속도로와 같은 탄탄대로는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가슴 뛰는 설렘도 없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도로가 훨씬 생동감 있고 매력적이다. 그 도로에서 이리저리 뻗어 나가는 샛길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한다. 지도에도 잘 표시되어 있지 않는 산길 들길 마을길을 갈 때 가슴이 설렌다.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과 조우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좋아하는 영 단어가 하나 있다. Unexpectedness(예기치 못함). 그렇다. 삶이 흥미로운 것은 내일 일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기 때문에 새롭게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처음 가보는 좁고 굽은 샛길이 가져다주는 매력이 바로 그와 같다. 

이제 생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와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되돌아 가기에는 오산마을 뒤로 이어지는 샛길이 너무 매력적이다. 부치갯재 너머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길을 잡아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다시 이 길을 방문할 것인가? 프로스트는 한 갈래 길을 다음에 걷자고 남겨 놓았지만 결국 그 길을 가보지 못하고 시 한 편만 남겼다. 그래, 걸을 힘이 있을 때 가 보자. 이 길 이름은‘오산로’이다. 언덕길을 넘어가니 왼쪽으로 작은 마을이 하나 보인다. 원마산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기슭 오붓한 곳 작은 마을

이 마을은 오산마을의 남쪽에 있는 마산(馬山) 뒤쪽에 위치하여 북쪽을 향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가삼봉이라고 부르는 산이 있고 도로 맞은편에는 성묘산성이 있다. 마산리 중에서 으뜸이 된다고 해서 으뜸 원(元)자를 붙여 원마산(元馬山)이라 했다. 마을의 역사는 그렇게 깊지 않다. 19세기 중반에 해남에 살던 동복오씨(同福吳氏) 오기상(吳基相)이 주변 산세를 보고 일가를 이룰만하다고 여겨 이곳에 터를 잡고 정착했다고 한다. 산기슭에 자리한 관계로 마을 터가 그다지 넓지 않아서 많은 가구가 살기는 힘들어 보인다.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원마산에서 오산으로 넘어가는 등성이를 마을 사람들은 부치갯재(부치재)라고 부른다. 부치갯재라는 말 속에는 부처를 뜻하는 부처 불(佛)자가 들어 있다. 한자로 표현하면 불치(佛峙)이다. 고개 옆에 부처를 모신 불당이 있었다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성묘산 기슭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부치갯재는 서호면 은적산 고개에도 있다. 서호면 소산리 밭소리 마을에서 학산면 매월리로 넘어가는 은적산 고개를 부치개(부치갯재), 불치(佛峙)라고 부른다. 불치는 상은적산과 하은적산의 경계지점이다.

원마산 마을은 산속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지만 볼수록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어찌 보면 있을법하지 않은 곳에 자리한 느낌이다. 속세를 떠나 은둔한 선비의 자태가 엿보이는 마을이다. 마을은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고 지극히 소담스럽고 안온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마을풍경은 여유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조그마한 마을회관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울창한 대숲 곁에는 노랗게 물든 커다란 팽나무가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 들어가 골목길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가삼봉 아래 있다는 우물에서 맑은 샘물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생각이 문득 일어난다. 오산로를 걷는 사람들은 원마산마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가기를 권한다.                                      
<계속>
 글/사진 김창오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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