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마을 뒷쪽 고갯길에서 내려다본 월출산 전경. 오산마을에서는 월출산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마을회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오산마을 뒷쪽 고갯길에서 내려다본 월출산 전경. 오산마을에서는 월출산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마을회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오산(蜈山)마을은 행정구역상 군서면 마산리에 속한다. 마산리(馬山里)는 동남으로 월곡리, 남서로는 성양리, 북으로는 해창리와 접경하고 있다. 마산리는 현재 오산을 1구, 신마산을 2구, 원마산과 낙안을 3구로 운영하고 있다. 오산리는 해발 98m에 이르는 성묘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쪽으로 제법 너른 들을 경영하고 있다. 성묘산 정상에는 옛 봉화대가 있던 터가 남아 있다. 성균관 대사성에 있던 경주이씨(慶州李氏)인 이흔(李昕)이 1500년대에 월출산 도갑사 부근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다가 현재의 오산마을인 죽림동(竹林洞)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죽림당(竹林堂)이라는 서당(書堂)을 세워 문하생을 양성하였다. 지금은 죽림당을 죽림정(竹林亭)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월출산 풍경이 일품인 마을

주암마을 진입로를 막 벗어나면 백리 벚꽃길인 영암로 건너편에 오산마을 표지석이 나그네를 반긴다. 마을진입로부터 오산마을회관을 관통하여 원마산을 거쳐 신덕정마을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오산로라고 부른다. 주암마을이 우람하고 웅장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에 오산마을은 소담스럽고 나지막한 소나무 동산에 포근하게 안겨있는 형국이다. 주암마을은 월출산 기슭에 자리한 관계로 마을 안쪽에서는 월출산 전경이 보이지 않지만, 오산마을에서는 월출산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마을회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신덕정마을에서 오산마을로 진입하면서 월출산을 마주해 보라. 보는 각도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진 월출산은 이 지점에서 영암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원마산을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내리막길이 최고의 뷰포인트(viewpoint)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주암마을과 마찬가지로 오산마을 역시 원래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영산강 하굿둑을 막기 전에는 덕진강 지류가 마을 아래까지 뻗어 있어서 해산물 수입이 있었으나 지금은 개펄이 모두 논으로 변했다. 
 

늦가을 정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오산마을회관 전경
늦가을 정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오산마을회관 전경

오산마을의 지명유래

오산의 오(蜈)는 지네를 뜻하는 말이다. 마을 이름이 지네와 관련이 있음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주암마을의 닭바위와 관련한 지네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오산마을 주민 이복기 씨는 마을 지명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오산이 왜 지네 오자를 썼는가요?’ 여쭸더니 마을에 지네 전설이 있어서 그랬다고 해요. 그래서 오산에 지네가 많은갑다 생각하지요. 오산 뒷산에 봉화를 올린 성터가 있는데 거기에 지네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요. 지금은 눈에 안 보입니다. 흙으로 덮어서 외부에서 못 보게 해서 그래요. 왜냐하면 오산하고 주암이 대보름에 기 싸움을 하곤 했는데, 오산이 지네 형국이고 주암은 닭 형국입니다. 지네와 닭은 상극관계입니다. 주암마을 뒷산에 닭머리 바위가 있어서 지네바위가 잘 보이지 않도록 흙을 살짝 덮어서 가려 놓았습니다. 지네는 닭한테 꼼짝 못하니까 말입니다. 닭이 죽으면 지네가 닭을 좋아하고(잡아먹고), 닭이 살아 있으면 지네를 쪼아 먹는다고 해서 닭이 못 들어오게 마을 주변에 칼바위를 세워놓았어요. 칼바위를 만들어서 닭으로부터 지네를 지켜야 했지요. 그래서 동네 주변에 일정 간격을 두고 죽 칼바위를 세워놓았지요. 지금은 없어진 것도 있고 몇 개 남아 있는 것도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주암마을 뒷산에 딱 닭머리처럼 생긴 닭바위가 있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르게 가서 부리를 뚜드러 깨서 닭이 지네를 못 쪼아먹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질 못 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전해와요. 그래서 지네 ‘오’자 뫼 ‘산’ 자를 써서 오산이라고 합니다.

옛날부터 우리마을은 항상 주암마을하고 대립을 했어요. 오산은 지네이고 주암은 닭이니까 서로 앙숙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대보름 때 쥐불놀이 하면서 주암마을 아이들하고 엄청나게 싸웠지요. 이것이 학교 현장에까지 연장이 되어 학교 파하고 오면서 아이들끼리 또 싸우곤 했습니다. 우리 오산마을이 규모가 더 커서 주암마을을 이기는 때가 많았습니다.”

마르지 않는 산꼭대기 샘

오복기 씨는 봉화대가 있던 마을 뒷산 꼭대기에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오산마을 뒤쪽에 성뫼산이고 불리는 산이 하나 있는데 그 꼭대기에 성터가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성터 돌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돌을 다 주어다 집을 짓는 바람에 지금은 성 흔적이 없어져 부렀지요. 여기가 봉화대가 있었던 곳이지요. 어른들 말 들어보면 여기 봉화대에서 불을 피우면 쩌그 완도까지도 연기가 보였다고 합디다. 그 성터 꼭대기에 샘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도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마른 적이 없었어요. 이 산꼭대기에서 어떻게 물이 나와서 안마를 수 있는 지 희한한 일이지요. 나중에 샘을 더 좋게 만든다고 포크레인으로 다 파서 새롭게 했는데 그 뒤로는 물이 다 말라버렸어요. 그 이유가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짐작이 가는 것이 하나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샘 바닥을 진흙을 발라서 물이 못 새게 했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샘을 복원한다고 포크레인으로 진흙 바닥을 싹 걷어내고 돌로 석축을 했는데 그 뒤로는 물이 나오자마자 밑으로 바로 새버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물이 고이질 않아요.”
             
<계속>
글/사진 김창오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