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적산 마실길에 나서다(17) ■ 남하동 마을

학파로에서 바라본 남하동 마을 전경. 마을 서쪽으로는 안온한 은적산이, 마을 앞 동쪽으로는 아름다운 서호강과 기름진 학파들녘이 자리해 넉넉함과 풍요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7월 아침 풍경

오늘은 은적산 마실길 마지막 마을을 만나러 떠나는 날이다. 모처럼 새벽에 일어나 작설차를 다려 마셨다. 창문 밖에 참새들이 지저귀고, 고샅 시누대 숲에 싱그러운 새벽바람이 일렁거린다. 마을 앞 들녘은 오랜만에 소낙비를 맞아 생기가 돈다. 뒷마당 복숭아나무에서 복숭아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7월 초순 고향마을의 아침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너른 들녘과 마을호수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 월출산과 은적산 허리에는 띠구름이 둘러있다.

500년 홍련지에 빠알간 연꽃 봉오리들이 연잎 사이로 얼굴을 뾰족뾰족 내밀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마을 골목길을 산책하고, 동네 아짐들을 만나면 서로 친근한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이장님을 만나 작은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에 대해서 의논하고, 서울에 계신 모정마을 향우회 회장님과 미래의 고향마을에 대해서 통화한다.

무너져가는 농촌마을을 살리는 일이, 곧 이 나라를 살리고, 이 세상을 살리는 일이라 믿어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마을로 돌아온 지도 벌써 19년이 되었다.

모정행복마을 추진위원장을 맡아 8년째 마을 가꾸기를 해오고 있다. 마을주민들과 함께 한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한옥 행복마을’,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선정되어 주거환경과 생활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조사 발굴하여 작은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제 마을 주민들도 마을가꾸기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이 달라졌다.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환경이 좋게 변하니 대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마을 자손들도 고향마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와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향우들의 이런 관심이 마을 가꾸기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제일 큰 보람이다.
 
귀농귀촌 현상에 대한 단상


요즘 시골생활을 꿈꾸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필자가 사는 집을 방문하여 귀농귀촌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간다. 대부분 대도시 열악한 환경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나무와 새들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귀농한다고 해서, 전원생활을 한다고 해서 세상과 등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생태 철학자인 스캇 니어링과 헬렌 리어링을 예로 들면서 귀농귀촌을 꿈꾸는 분들 또한 여럿 보았는데 니어링 부부야말로 산 속에서 살면서도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기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다.

도인처럼 세끼 밥만 먹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다. 가장 도인처럼 산 것 같지만 가장 정치적인 인간으로 살다가 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니어링 부부는 사업수완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단풍나무 수액을 가공하여 생활비를 벌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이웃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소통했으며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강연을 했다. 이들이 쓴 책들은 단순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한편으로 귀농귀촌을 꿈꾼다고 하는 분들이 원하는 귀농지의 입지조건을 보면 정말 놀라울 때가 많다. 대도시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 경치가 좋은 곳, 계곡이 있고 물이 맑은 곳, 그러면서도 별다른 비용 없이 손쉽게 정착할 수 있는 곳, 뜻이 맞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곳 등을 원한다. 결국 대도시 언저리를 맴도는 도시 의존적 태도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편의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도시 주변에 값이 싸면서도 풍경이 좋으며 농사짓기 편한 땅은 없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현실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 주변 경치 좋은 계곡 옆에다 별장 지어놓고 여름철에 잠시 들려서 휴가 보내는 곳이 아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순박하고 인심 좋은 것도 아니며 자신들의 생각과 죽이 맞는 것도 아니다. 부부 사이에도 뜻이 맞지 않아 토닥거리며 사는데 남하고 얼마나 뜻이 맞아 동지로 살 수 있겠는가? 귀농이든 도시 생활이던 전원생활이던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맞추어 홀로서기를 결심하지 않는 한 항상 겉도는 삶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남하동 마을을 찾다

집을 나서면서 보니 은적산 위로 시커먼 장마구름이 가득하다. 모내기가 끝난 서호강 들녘이 온통 초록으로 변했다. 장천리와 영풍리를 지나면서 그 동안 걸어왔던 은적산 마실길을 떠올려 보았다. 작년 3월에 청룡리 노동마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종착지까지 왔다. 처음 ‘은적산 마실길’ 연재를 시작할 때는 1년 정도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조금 더 걸린 것 같다.

신풍리 모개나무재를 넘어 소흘마을을 지나 서호로를 따라 성재리를 향해 1km정도 걷다보면 남하동마을이라고 새겨진 입석을 만나게 된다. 송산마을에서 학파로를 따라 무송동을 향해 걸어도 남하동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남하동은 서호로와 학파로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다. 법정리로 보면 성재리에 속한다. 성재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성인이 태어날 명당지라 하여 성재(聖才) 또는 성재동(聖才洞)이라 하였다고 하며 자연마을은 남하동 마을, 무송동 마을, 성재동 마을 등이 있다. 성재동 마을이 1구, 남하동 마을이 2구, 무송동 마을이 3구로 분구되어 운영되고 있다. 각 자연마을 이름은 학파농장을 조성한 현준호 일가의 이름과 관계가 깊다. 무송동은 현준호의 호, 남하동은 현준호의 맏형 현용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마을 서쪽으로는 안온한 은적산이, 마을 앞 동쪽으로는 아름다운 서호강과 기름진 학파들녘이  자리하여 대부분의 주민들이 쌀농사를 짓고 있다. 소흘리에서 남하동으로 들어서는 마을초입에 영암군농업협동조합 통합미곡처리장이 있으며, 2009년부터 우수 브랜드로 선정된 ‘달마지쌀 골드’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 남하동 마을에서 초록으로 눈부신 너른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넉넉함과 풍요로움에 절로 흥이 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일상에 매몰되어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 성재리 남하동 마을에 와서 끝없이 펼쳐진 서호들녘을 바라볼 일이다. 특히 은적산 너머로 석양이 지는 시간에 와서 보면 더욱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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