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마을 14

군서 백암동에서 서호동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해 있는 죽도. 들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학산천이 흐르는데 다리 건너기 전 우측에 소나무가 있는 곳이 죽도의 모습이다.

죽도(竹島) - 간척 전까지 영암 최고의 소풍 장소

 

선비들이 노닐던 아름다운 섬

죽도는 말 그대로 대섬이다. 옛날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이곳을 대섬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왔다. 죽도는 군서 백암동에서 서호동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해 있다. 들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학산천이 흐르는데 다리 건너기 전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들녘이 넓다. 학산천 양쪽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강물이 흐르는 쪽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옛날에는 여러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가구가 살고 있다. 이곳 일대는 현준호가 일제시대 때 간척하기 전까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서호강이었다. 그 당시 죽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던 셈이다. 옛 사람들이 남긴 시문을 보면 죽도에 관한 내용이 제법 많이 나온다. 서호면 쌍풍리 신풍마을에 가면 소호정이라고 하는 운치있는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는 주변의 풍광을 읊은 소호정팔운(蘇湖亭八韻)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 죽도서구(竹島棲鷗)라는 시구가 있다. 죽도에 사는 갈매기라는 뜻이다. 제봉 고경명이 월출산을 찬미하다가 마지막 행에 죽도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당시에 죽도가 선비들이 갈망하는 소풍 장소로 이름이 높았던 것 같다. 특히 월당 임구령의 장남인 남호처사 임호는 죽도에 관한 시를 많이 남겼다. 임호는 구림 서호정 요월당에서 거처하였는데 그가 남긴 시문을 읽어보면 죽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달랐던 것 같다. 친구들, 가족들, 손님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배에 태워 죽도로 소풍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풍경이지만 서호강 한 가운데 외로이 서서 온갖 풍상을 견디며 뭇 사람들과 갈매기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던 죽도에 대해서 남호처사 임호가 쓴 시문 몇 편을 소개한다. 이 시 몇 편만 읽어봐도 죽도(대섬)의 아름다움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임호의 죽도에 관한 시() 6

 

죽도(竹島)에서 노닐다

 

호수 가운데 이슬 내려 풍경은 또렷하니

마치 신선이 이곳에 내려왔나 싶구나.

물결 높아져 하늘높이 치솟아 눈발 내리는 듯하고

이름은 죽백에 드날려 푸르름을 머금었도다.

고금의 나그네 수심은 어느 정도였던고

풍월을 읊은 시인은 취했다 깨었다 하네.

에에 에에 노젓는 소리에 어둠이 찾아오고

이미 돛대 올려 서쪽 정자에 배를 대는 줄 알겠도다.

 

 

 

죽도에서 노닐며 사위 임생의 운에 따라 지음

 

태평성대 남녘땅 나그네가

외로운 배로 옛섬에서 노니네.

시절은 풍년이라 술 구하기도 쉽고

가을이라 낚은 고기도 많다네.

티끌 묻은 세상은 눈 밖에 둔지라

마음엔 갈매기만 시드는데

북쪽을 바라보는 마음 착잡하기만 하구나.

 

 

 

박문중 박중용 고여관과 죽도에서 노닐다

 

거상 삼년동안 차마 죽지 못한 늙은이

오늘은 조각배 하나 허공에 띄웠네.

생선으로 서생의 뱃속을 채우니

서산의 낙조 붉어짐도 까먹었네.

백설 같은 머리털 육십이 되었으니

바닷가에 부서지는 밀물이로다.

선비님들 이 늙은이 강건타고 착각일세,

술 때문에 붉어진 낯빛 그 누가 믿어주리.

 

 

마을사람들과 죽도에서 노닐다

- 마침 박경인과 곽심이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하기에 지음

 

은빛 같은 하얀 고기 그물에 걸려들고

좋은 안주에 술잔 드니 보이는 것마다 참신하다.

태평성세 지금 누리지 못한다 말하지 말게

모래밭에 취해 누운 벗님을 붙잡아 일으키네.

 

 

죽도에서 임판관 형제 4인과 임몽 김천주 모두에게 보임

 

서호의 기인한 승경은 동국에서도 으뜸이니

종일토록 오랜 시간 두 다리가 수고로웠네.

물결이 일어 옥구슬 흩어지는 창해 위에서

하느님이 진실로 늙은이들을 위로하는도다

 

 

신주부 기선과 죽도로 유람하기로 약조했는데 일이 생겨 오지 못하고

동료들과 노닐며 그에 대한 글을 짓다

 

서호에서 함께 감상하자 다시 불렀는데

약속 어긴 푸른 물결에 외로운 배 띄웠네.

곱게 단장한 석양은 그림보다 고와서

신선이 산다는 곳 오나라의 세 곳만은 아닐세.

 

제봉 고경명의 시() 속에 나오는 죽도

한편 제봉 고경명이 쓴 시에도 죽도가 나온다. 고경명(1533~1592)은 광주 출신으로 시문이 뛰어난 선비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0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격문을 돌려 6,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달려가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월출산을 기행하며 노닐다 영우대사에게 주는 시

 

손님이 있어 서호에 이르니, 월악에 돌아갈 마음 급하구나

돌아가는 행장에 보슬비 부슬부슬,

도롱이 입고 동문에 들어갔네

옛 절은 높기가 천 길이오, 붉은 사다리는 백층으로 드리웠네

가운데에 고명한 선사 있어 문밖에 뛰어나와 나를 맞아주네

매달린 비탈에는 고목이 빽빽하고

돌길에는 푸른 이끼가 끼었구나

바람을 맞아 옥퉁소를 부니, 용이 영추에서 우는 듯 했네

그윽하고 깊숙한 동백정자 남은 향기 낭떠러지 절벽에 풍기네

율현이 앞을 깍은 듯이 낮으니, 천형은 새 갓을 엎은 듯하여라

용암사 높이 매달렸으니, 창해를 끌어당길만하구나

구정봉에 날아오르니 두 겨드랑이에 바람이 습습하다

소매를 연하여 표전에 내려오니 자국마다 숲 아지랑이 젖었구나

의상대 드높이 솟아있어

굽히면 새벽안개를 마실만하네

원효천 끊임없이 흘러 내렸으니

성스러운 중이 응당 회식을 끊었으니

고산사 동쪽머리에 어지러운 돌 공중에 솟아있구나

청려지팡이로 녹거를 대신했으니 흥을 타서 산다화 꺾었더라

이번 놀이에 하늘이 편의를 주어

풍진이 백에 열밖에 아니 되었네

마치 천리마가 길게 울며 굴레 벗은 듯하구나

다른 해에 화하여 학이 되어 죽도에 날아 모일까 하노라

 

/사진 김창오 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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