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 · 발행인)
푹푹 찌는 무더위로 여름나기가 힘든 요근래 메가톤급 뉴스가 연일 터지면서 짜증을 더 해준다.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은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서민들에게 삶의 의욕마저 꺾어버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 감고, 귀 틀어막으며 살 수도 없으니 말이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끝없는 욕망, 안기부의 불법도청으로 불거진 정·경·언의 유착관계는 우리나라의 현 주소를 또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한 마음일 뿐이다.

남달리 끈끈한 가족애로 109년 전통을 자랑하던 국내 최고(最古)의 재벌이 형제간의 재산 분쟁으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집안의 재산 싸움이 재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른바 ‘왕자의 난’을 두 차례나 치른 옛 현대그룹을 비롯해 ‘돈 앞에서는 형제고 뭐고 없다’는 추한 꼴을 숱하게 드러낸 게 우리네 재벌들이다. 따라서 이들 형제의 싸움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끝나느냐는 그리 큰 관심사는 아니다. 그 보다는 고발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의 치부이자 아킬레스건인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의혹까지 제기한 이번 두산사태는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을 넘어 사법처리로 이어지고 자칫 회사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그룹회장을 지낸 사람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20년간 비자금 1천700억원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는데, 어찌 가볍게 보아 넘길 사안인가.

또 문민정부를 자처했던 김영삼 정부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특수 도청팀을 운영해 정계와 재계, 언론계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 도청을 자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른바 ‘X파일’을 비롯해 일부 언론을 통해 드러난 안기부의 도청 행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문민정부 때 버젓이 일어났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압수된 테이프가 무려 8천여개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광범위하게 도청이 이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안기부 도청 테이프에는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고위층간 '대선자금 지원 논의'가 담겨져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그룹이 대선주자들에게 광범위하게 불법 대선자금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당시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불법 대선자금 지원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이 미국 대사직을 맡고 있었다니 이 또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런 검은 커넥션을 빌미로 전직 국정원 직원이 문제의 'X파일‘ 해당사인 삼성그룹에 도청 테이프를 거론하며 수억원에 사도록 협박까지 했다니, 이쯤 되면 모럴 해저드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물고 물리는 세상의 또 한 장면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안기부의 도청사건과 삼성그룹의 불법대선 및 로비자금 제공설 등에 대한 진상은 한점 의혹 없이 신속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국민적 범죄행위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응징과 제도적 장치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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