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 · 발행인)
요즘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이 안방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10·26 사태 이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5월을 맞아 전라도 사람들에게 또 한번의 회한을 안겨주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실존인물 들이 대거 등장하고,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드라마를 통해 전국에 방영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5.18 광주민중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기 까지는 너무나 지난(至難)한 세월이 흘렀다. 피의 댓가 치고는 너무 많은 고통의 세월을 흘러 보내야 했던 것이다.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오늘 이만큼에 이르기까지는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폭도’로 매도되고 ‘문제아’ 취급받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아뭏튼 전라도 사람은 당시의 위정자들에게는 ‘문제아’ 들이었지만 항상 역사의 한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비롯 한말 제국주의의 침투와 봉건체제에서 위기상황에 빠졌을 때 일어난 동학농민전쟁,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시기의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석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호남지방의 역사나 문화성격의 하나로 ‘의향(義鄕)’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의향이라 함은 역사적으로 ‘의(義)’를 들어내는 행동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음을 의미하리라. 또 최근에는 ‘호남학(湖南學)’이라는 학문도 생겨나 호남정신을 다시 조명해보는 작업도 활발해 보이는 듯 하다.

어쨌든 근·현대시기에 호남은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고 무도한 정권에 대한 민족적·민중적 저항이 다른 지역보다 활발하게 일어난 곳이라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5.18 광주민중항쟁도 역사적으로 대사건이었다. 지금 이 시대, 자유를 이만큼 누리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전라도 사람들이 뿌린 피의 댓가다. 80년 당시 산천초목이 떠는 계엄하에서 누가 감히 ‘경거망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12.12 쿠데타를 감행한 신군부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광주폭도’들의 삶은 한낱 ‘파리목숨’ 정도에 불과하지 않았겠는가. 정말 무식하게도 전라도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민주화와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함성은 전라도 구석구석까지 번져갔다. 계엄령 확대발표와 동시에 끌려가 상무대에서 구금생활을 하고 풀려났던 필자의 눈에도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진압군과 시민군의 싸움은 ‘바위에 계란치는’ 격이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숨을 담보로 끝까지 저항하며 불의에 항거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과연 이 무렵, 목숨을 걸고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먹고 살만한 부류들이 모여 있는 수도권과 경상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5.18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해마다 이맘때면 기념행사 준비로 요란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에서 5.18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역사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그럴 때라야 전국화, 세계화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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