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 · 발행인)
가깝고도 먼 것이 이웃이다. 이웃이란 사귀기에 따라서 사촌보다 가깝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보다 미워하는 사이가 된다. 맞대고 살기 때문이다. 서로의 속사정을 너무도 자세하게 알고 있는 나머지 어쩌다 다투기나 하면 조상 때부터의 험담이 쏟아져 앙숙처럼 토라지기 쉽다.

그래서 동네 혼사(婚事)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서로간의 흠집을 잘 알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리다가 실상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선린(善隣)하면 일가(一家)와 같고 소원(疎遠)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로 변하는 것이 바로 ‘이웃’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웃이란 본래 서로 조심하며 다투지 말고 살아가야 옳은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일본과 우리나라도 분명한 이웃이다.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이 지내야 할 숙명적인 이웃이다. 그런데도 두 나라 국민사이에는 해묵은 감정이 남아있다. 침략과 지배를 당한 입장에서 좋은 감정이 남아있을 리 없다. 하물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디 그 뿐인가. 역사를 왜곡하는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우리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일본은 이웃인 우리나라와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원하고 있는지, 맞대결을 하자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일감정이 극에 달해 있는 시점에서 최근 한 연예인의 발언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가수출신 조영남은 최근 친일본 우파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독도 및 교과서 문제와 관련,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 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여론의 뜨거운 질타를 받고 있다. 그는 최근 펴낸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통해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국민들의 감정을 추스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전국시대(全國時代) 제(齊)나라의 최저는 주군(主君)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제나라의 사관(史官)인 태사는 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했다. 최저는 태사를 죽였다. 태사의 동생이 또 사실대로 썼다. 동생도 죽였다. 그랬더니 그다음 동생이 이어받아 썼다. 그래서 최저마저도 그다음 동생은 죽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기(史記)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나온 얘기다.

역사란 어느 누구도 왜곡해서는 안되고, 왜곡될 수도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역사란 진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역사를 믿는 것은 이처럼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권위와 오만은 때론 역사를 그릇되게 기록할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거짓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역사가 그걸 입증하고 있다.

‘화해’란 서로가 믿을 수 있을 때 성립된다. 상대를 ‘용서’ 한다는 것도 신뢰에 바탕을 둔다.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용서’와 ‘화해’란 진정 이뤄지기란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독도 영유권 주장과 함께 교과서 왜곡문제는 그들의 진실된 마음가짐이 어느 정도인지를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다. 진실된 역사를 감추려는 그들의 저의는 분명 과거의 역사를 정당화 하려는 속셈일터. 충무공탄신일 460주년을 맞아 염치없는 이웃을 두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또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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