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 · 발행인)
“25년간 농협에 몸담아 왔지만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IMF이후 최근 몇 년이 지나온 20여년 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농협을 찾았을 때 한 직원이 불쑥 내뱉었던 말이다. 직장생활이 무척 힘들어졌다는 하소연(?) 조의 이 말은 어찌 그 자신만의 일이겠는가.

그렇다. 쉽게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농민들의 신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는데 그들이라고 편한 직장이 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지금의 그런 푸념은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전라도 말을 빌리자면, 앞으로 이보다 더 ‘배야지 따땃한 장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동안 농민들을 등에 업고 편한 장사를 해왔지만 이젠 그 좋던 시절도 다 지나간 것이다. 가을이면 나락돈, 여름이면 보릿돈 갖다 쌓아놓고 농사철이 되면 다시 이자 붙여 내주는 ‘누워 떡먹기’식 장사를 해왔지 않는가. 천억대 내외의 군금고도 농민들을 위한답시고 지금까지 철밥통처럼 굳건히 지켜가고 있으니 시골의 돈이란 돈은 깡그리 농협 차지였다.

농민들이야 빚에 쪼들려 내쫓기든 말든 농협은 순풍에 돛을 달 듯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거대한 공룡이 되어 위정자들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조직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1차 수술대상으로 올려놓곤 하지만 번번히 유야무야 되는 꼴을 수없이 보고 있는 것도 공룡화 된 조직과 무관치 않다. 농민들을 등에 업고 짭짤한 장사를 했으면 그 댓가는 당연히 농민들에게 가야 하건만 그러질 못한 것이다. 적자이든, 흑자이든 직원들의 복리후생이 먼저였고, 문어발식 자회사 확장에 열을 올려 퇴역자 처리에 골몰해 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정작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은 뒷전이었다. 손해만 나는 경제사업은 구색맞추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들이 생색내고 하는 ‘환원사업’이라는 것도 무늬에 불과할 뿐 제식구들의 몫에 비하면 ‘코끼리의 비스켓’에 지나지 않는다.

자, 지금도 보시라. 농업. 농촌이 어렵다고 아우성들이지만 농협군지부장은 군금고 지키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농민들의 권익보다는 지자체장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일과가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들의 일터가 고단해진 것도 농업. 농촌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농민 생산자단체’라는 미명하에 장삿속 배만 불려왔지 그 대책은 전무했던 것이다.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공멸을 자초한 셈이다. 농협에 대한 농민 조합원들의 불신은 이러한 원초적인 문제가 내재돼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월출산농협이 단행한 결정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임직원들의 몫을 농민 조합원들과 함께 나눠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것은 전국에서도 보기드문 사례다.
물론 모양새가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각종 경비를 줄이는 대신 조합원 중심의 사업에 쏟겠다는 것은 여타 조합에 미칠 파장에도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조합원 없는 조합이 있을 수 없듯 농협은 농민들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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