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 · 발행인)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일어나던 중국 고대의 한 시기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한다. 물론 이때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걸출한 사상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장자(莊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노자와 함께 노장(老莊) 사상을 연 큰 인물이었다. 그러나 집이 몹시 가난한 장자는 밥 해먹을 양식이 자주 떨어지곤 했다.

어느 날, 양식이 바닥난 장자가 감하후(監河候)를 찾아가 양식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하후는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형편이 어려우니 좀 기다렸다 조세를 거둬들일 때가 되어 은 300냥을 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곧 굶어 죽을 지경인데, 먼 훗날의 은 300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화가 잔뜩 난 장자가 그에게 말했다. “어제 내가 길을 걷다 물고기 한 마리가 길가의 마른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물고기가 나를 보더니 ‘어르신, 저는 본래 동해에 있던 몸인데, 어쩌다 이 마른 구덩이에 떨어져 물이 말라죽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물 한 통 가져다 저를 좀 구해주시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자꾸나. 마침 내가 남쪽의 여러 왕들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그곳에는 물이 많으니 내 반드시 물을 가져와 너를 구해주마’라고 했지요. 그러자 그 물고기는 몹시 화가 나서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단 한 통의 물이니, 당신이 서강(西江)의 물을 가져오기를 기다린다면 아마 나는 어물전에 가야 찾을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더군요.”

가난하기 짝이 없는 장자에게 양식을 빌려줘 봤자 돌려받기 어려움을 안 감하후가 장자를 교묘하게 따돌리고자 한 것인데, 장자도 멋들어진 비유로써 되받아 친 것이다.

고어지사(枯魚之肆). ‘목마른 물고기의 어물전’으로 풀이되는 이 말은 매우 곤궁한 처지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한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 낙관론을 피력한 바 있다. 제17대 국회개원 축하 연설을 하면서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 위기론에 대해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위기가 아니다"고 밝혔다. 올해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외환보유액도 1천600억 달러를 넘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고, 상장기업들의 이익률이 97년이래 최대치인데다 부채비율도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진 만큼 현 경제상황을 위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정치인도, 기업인도, 언론도 책임 있게 말해야 한다"면서 "불안해서 위기를 얘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또는 필요한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불안을 증폭시키고 위기를 부추겨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백번 옳으신 말씀이다. 경제논리가 정치적으로 악용돼선 절대 안될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현재의 경제상황과 미래전망을 너무 장밋빛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경제가 어려워 온 국민이 아우성인데 대통령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이런 상황을 두고 ‘목마른 물고기의 어물전’ 이라고나 할까.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들 아우성인데,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서민들의 감정을 은근히 자극시키는 꼴이 되고 있다.

물론 경제성장률 등 지표상으로만 보면 현재의 상황을 위기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최악의 실업난과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 등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바닥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위기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농촌의 현실에서 대통령의 ‘경제낙관론’은 감하후가 장자를 벗삼아 놀고 있는 꼴이 아닌가 싶다.

정․재계와 일부 언론계의 과장된 경제 위기론에 쐐기를 박아 참여정부의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낙관하는 것은 경계의 대상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한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