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발행인)
농협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굳이 새로울 건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모처럼 농민을 언급하고 나서 관심이 갖게 한다. “농협 간부라는 사람들이 정치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이권에나 개입하고 있다” “금융해서 몇 조원씩 벌어 사고나 치고...”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농협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낸 비판이다. 그러자 발칵 뒤집힌 농협중앙회가 긴급 대책회의 끝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각각 지주회사로 설립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혁 기본방향을 서둘러 내놓는 등 연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역대 정부치고 ‘농협개혁’을 들고 나서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그 기간에도 ‘농협개혁’은 최대의 화두(話頭)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농수축협의 개혁을 들고 나왔다.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농어민들이 마음 놓고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금융업무까지 박탈하겠다는 대통령의 으름장은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개혁파인 노무현 대통령도 농협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농협금융과 유통, 중앙회를 분리하는 신경분리안을 제시하고 농협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농협이 센지, 내가 센지 모르겠다”며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역대 농협중앙회장 3명이 줄줄이 범법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통과의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현 정부가 국면전환용으로 들고 나서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려운 경제위기 상황이 결코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메시지 전달과 함께 시장바닥과 농촌 등 곳곳에서 들리는 영세상인과 농민들의 아우성을 어루만져 주는 다분히 정치적 제스처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불쑥 민생현장을 방문해 ‘깜짝 쇼’하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연례행사처럼 호들갑을 떠는 농협의 작태를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위기를 일단 넘기고 보자는 식이 아닌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인적쇄신을 통한 구조조정 ▲농기계임대사업 조기정착 ▲유사업종 자회사 통합 ▲불요불급한 자산매각 ▲농산물 산지 점유율 60%, 소비지 점유율 15% 달성 등의 과제를 제시하는 등 최근 내놓은 개혁안도 그렇다. 이렇게 즉각 튀어나올 수 있는 개혁이라면 왜 여태까지 미뤄왔는지 모를 일이다.

이 중 농기계임대사업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는 우려가 더 크다. 농협 빚을 안고 산 농기계를 회수하여 임대사업에 활용하겠다는 농협의 발상은 결국 농협부채를 털어내겠다는 ‘장사’논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고 지켜볼 일이지만, 농민들의 얘기를 경청해보면 농기계임대사업도 겉돌 확률이 커 보인다.

농협은 하루속히 농민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돈 될 일은 농민을 앞세우면서, 정작 농민을 위한 일은 외면하거나 행정기관에 떠넘기는 몰염치는 농민들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질타가 아니라도 “농협이 돈벌이에만 골몰하고 정작 주인인 농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세간의 비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환골탈태하는 것만이 농협의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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