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발행인)
월출산에 첫눈이 내렸다. 긴 여름을 지나 가을인가 싶더니 벌써 우리 곁엔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서민들에겐 겨울나기가 더욱 버겁다. 추위도 추위려니와 꽁꽁 얼어붙은 경제한파가 서민들을 덮치고 있다.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기업들이 서둘러 구조조정에 나서고 감원바람도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업계도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대불산단이 올 겨울을 편안하게 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느 곳 하나 안전지대가 없는 것 같다.

혹독한 시련을 겪어온 농촌도 매 한가지다. 오히려 엎친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폭등하는 농자재 값에 갈수록 떨어지는 농산물 값은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수확은 했지만 손에 쥔 게 없다고 울상이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오히려 빚만 쳐지게 된다고 하니 이 노릇을 어찌할 건가.

그런데 또 농민들을 울리고 있다. 배추값이 폭락하여 산지 폐기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배값 폭락에 이어 배추마저 김장철이 다가왔지만 유통조차 되지 못하고 산지에서 그대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폭락을 막기 위한 정부와 농협의 조치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농심(農心)은 어찌하겠는가. 지독한 가뭄을 이겨내며 그동안 공들여 키운 배추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폐기처분해야 하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올해 김장 배추 생산은 작년보다 26%(평년대비 16%) 정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지난해 가격상승 이후 농가들이 앞다퉈 배추를 심어 재배면적이 작년보다 21%(평년대비 14%) 늘어난데다 알맞은 기후로 작황도 좋았기 때문이다. 김장 무도 마찬가지란다.
이로인해 영암지역의 폐기물량은 전남에서도 가장 많은 138.7ha로 관내 전체 생산량의 39%를 폐기하게 된다. 다음달 5일까지 농협 약정물량을 우선 폐기하고 비계약 물량은 조합에서 별도 희망물량을 파악해 폐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농산물이 수급조절에 실패, 과잉생산에 이른데는 날씨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배추·고추·마늘 등 채소류에서 해마다 가격 폭등과 폭락, 갈아엎기가 반복되는 현상을 전적으로 ‘하늘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농업인과 정부가 함께 근시안적 생산 행태와 미흡한 수급 예측·관리 시스템 등을 개선하면 급격한 생산·가격 변동 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장철 배추값이 뛰자 생산과 수요에 대한 정밀한 예측없이 올해 너도나도 배추 농사에 뛰어들어 재배면적이 무려 21%나 늘어난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배를 폐기한데 이어 이번 주에는 배추를 갈아엎고, 그리고 다음 주에는 무를 폐기하는 기막힌 현실. 농촌에 살면서 뾰족한 대안도 없이 해마다 외줄타기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먹구구식 생산으로 해마다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 폭락 또는 폭등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걸까.

“농산물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등장하는 산지폐기 정책은 마땅한 현실적 대안을 찾기도 어려워 추진하고 있는 임시방편일 뿐, 대체작물 추진과 김치 가공공장 설립 등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농협 관계자의 말은 요즘 농촌의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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