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발행인)
엊그제, 타들어가는 대지에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해갈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아쉬운 대로 급한 불은 끈 셈이다. 비온 뒤라 그런지 월출산 자락을 타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스산하기 짝이 없다. 도로가에 나뒹구는 낙엽들은 벌써 겨울을 재촉하는 듯하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속 타는 농민들의 마음이라도 대변하듯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올해도 풍년농사는 이뤘지만 뛰는 물가를 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데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도둑을 맞았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건가. 쌀 직불금은 실제 쌀 농사를 짓는 농민의 소득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하기 위한 보조금이다. 비경작 농지 소유자가 이를 챙기는 것은 주로 부동산 투기를 위한 것으로 파렴치한 탈법행위다. 그런데 이 같은 파렴치 행위를 서슴지 않은 차관 등 고위 공무원이 수두룩하다니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 단순히 도덕적 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안의 성격과 경과가 심각하다. 배신감과 분노가 커지는 이유다.

농업개방으로 고사위기에 몰린 농민들을 절망케 하는 일이다. 비단 공무원 뿐 이겠는가. 직불금을 타 간 사람 중에는 공공기관 임직원, 의사, 변호사, 정치인 등 우리나라 ‘1% 부자’가 많다. 이처럼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소작농민의 쌀 소득보전금을 가로챘으니 벼룩의 간을 빼먹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 서울 고시원에서 ‘묻지마’ 살인이 벌어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30대 젊은이가 자신의 방 침대에 불을 지르고 복도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칼로 찔러 죽인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이 젊은이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 이 젊은이만이 가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지금 우리농촌엔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읍·면 소재지 상가엔 어둠이 깔리기도 전에 스산한 바람만이 정막을 깰 뿐이다. 이 때문에 문을 닫는 상가도 해마다 늘고 있다. 쇠락해가는 농촌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이른바 ‘도미노’ 현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며 종부세 완화정책도 결국 재정이 열악한 지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재정이 어려운 만큼 복지혜택은 줄어든다.

그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현 건설업계의 위기 타개를 위해 적게는 1조원에서 많게는 2조원을 투입할 거라고 한다.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온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붇겠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인내를 요구하며 사회가 안정되기를 바란다면 이명박 정부는 결국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묻지마’ 살인사건은 우리사회의 불신과 위기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실업은 늘고 양극화의 골은 깊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 과연 제2, 제3의 ‘묻지마’ 살인사건이 안 나온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다음 주에는 ‘영암군민의 날’ 행사가 다채롭게 열릴 예정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출향인들도 많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상 일 잠시 잊고 출향인과 서로 어우러져 그동안 농사일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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