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발행인)
요즘 일고 있는 쌀 직불금 파문이 농업인들의 가슴을 또 한번 멍들게 하고 있다. 각종 농자재 값은 자고 나면 올라 농업인들의 목줄을 옥죄고 있는 판에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엉뚱한 곳에 줄줄 세고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도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연루사실이 속속 확인되면서 농업인들이 삶의 의욕을 꺾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추곡수매제 폐지와 함께 2005년 도입된 직불제는 산지 쌀값과 목표가격 차액의 85%를 정부가 직접 메워주는 제도다. 시장 개방에 따른 쌀 농가의 피해를 일부 보상한다는 취지에서 다. 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비경작자도 해당이 되고 지원이 대규모 농가에 집중되다 보니 정작 보호를 받아야 할 영세 농가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감사원이 2006년 쌀 직불급 수령자 99만8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 경작자가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인원은 28만여 명. 이 가운데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나 가족이 4만6천여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100여명의 고위공무원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강남에 사는 땅주인 중 56% 이상이 쌀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사실도 확인돼 농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해주고 있다. 비료구매나 농협수매 참여사실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이 추정이 맞다면, 2006년의 직불금 1조1천여억 원 가운데 1천680억 원은 무자격자가 불법 수령했다는 얘기다. 열 명 중 세 명꼴이 무자격자로 의심된다면 쌀 직불금은 그야말로 ‘눈먼 돈’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은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해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부정수급 의심자로 추려냈던 17만여명의 데이터를 모두 폐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민들의 격앙된 감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리 영암에서도 땅값을 노린 대불산단 주변 삼호 간척지가 많은 외지인에게 넘어가 쌀 직불금 부정수령 사실이 분명히 있을 터이지만, 영암군에서 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 쌀 직불금 수령인의 직업 등 개인정보 사항은 정부에서만 확인할 수 있고, 해당 지자체에서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가 없다는 게 이유다.

도대체 이 나라에선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물론 지역에서는 공직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조상대대로 물려온 땅을 일구는 성실한 공무원들도 많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시간을 쪼개어 농사일을 병행하는 농촌지역 공무원에게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문제는 투기목적으로 농지를 산 후 임차인에게 줘야 할 쌀 직불금을 자신이 챙기는 몰염치가 비난의 대상이다. 따라서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옥석을 가려내 형사처벌이나 인사상 불이익 등 응분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특히 고위 공직자가 연루됐다면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하루속히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지만, 정부가 뒤늦게나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소득이 적고 직접 벼농사를 짓는 농민에게만 직불금을 주는 쪽으로 제도를 고친다고 한다.

곁들여 최근 추진 중인 농기계임대사업도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농가마다 농기계를 보유하지 않더라도 고령의 농민이 기계를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할 것을 주문한다. 무늬만 번지르하고 실속이 없다면, 아예 추진하지 않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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