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서울시 교육감을 바라볼 만큼 전도가 유망한 유 교감이 교장 발령을 앞두고 갑자기 사표를 내던졌다. 그것도 서열 1위이니까 강남 물 좋은 곳으로 발령받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어디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아니면 작은 각시를 두었다가 들통 날 지경에 이른 것인가. 그도 아니면 남 몰래 진 빚을 퇴직금으로 청산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세간의 사람들의 추측은 글자 그대로 난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장이란 교원들의 별이라서 누구든 일단 교단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쳐다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아! 지금 자네가 제 정신인가? 남들은 교장 좀 해보려고 발이 닳도록 교육장을 찾아 다녔다, 퇴근 후 곧바로 강습을 받으러 갔다, 연구보고서 쓰느라 새벽녘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판에 다 된 밥상을 걷어차고 나오다니 도대체 자네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암만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가네, 안가?”

“아니야 자네야말로 진정한 자기의 삶을 찾은 거야. 외려 만시지탄이 있지 있어.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내세운 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 모두가 함몰되어 휘청거릴 때 자네야말로 큰 결단을 내린 거야. 요즈음 무슨 광곤가에서 다들 ‘예’ 할 때 혼자서 ‘아니요’ 할 줄 아는 사람, 다들 ‘아니요’라고 할 때 외롭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는데,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자넬쎄. 자네가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야. 대홍수가 나서 온갖 것이 다 떠내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마리 미꾸라지 새끼가 떠내려가면서도 사나운 물줄기를 헤치며 역류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사표를 내던진 자네의 모습이었네.”

유 교감은 이토록 상반된 두 목소리를 뒤로하고 총총히 떠난 지 이년 여 만에 영암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난 한 동창에 의해 그 근황이 알려졌다. 유 교감 부부는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다는 것이다. 애써 수소문해 찾아간 동창에게 “가난하게 사는 법을 조금만 안 다면, 그리고 아주 쬐금만 욕심과 경쟁심을 줄일 수 있다면, 이런 삶을 권하고 싶다”며 산 속 시원한 공기와 골짜기에 흐르는 맑을 물을 한껏 자랑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도라지며 옥수수 농사를 짓는 토종 산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 없지 않지만, 오십 고개를 넘은 나이에, 뒤늦게나마 자기의 삶을 찾아 사랑하는 아내와 땀을 서로 닦아주며 거둔 만큼 자라나는 곡식과 채소를 들여다보며, 종일을 보낼 수 있는 기쁨은 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삼십대 철학박사의 귀농을 통한 고정관념 깨기도 아니고 어느 국립대학교 중견 교수가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표를 내던지고 벽지를 찾아 공동체학교를 세운 거룩한 일도 아니다. 또 어느 작가가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느 화가가 그림에 몰두하기 위해, 어느 무사가 도를 닦기 위해 출가한 것과도 사뭇 다른 그냥 평범한 자기 삶을 위한 발버둥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출산 자락의 아름다운 산수보다도, 욕심과 경쟁에서 약간 비켜서서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더 없이 자연스럽고 더 없이 아름다워 보이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높이 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권력을 거머쥘 수 있을까. 그들이 모을 수 있는 재산은 어디까지이며, 그들은 얼마나 더 유명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몇 살까지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옳은 삶일까. 뭐가 도대체 내 삶의 모습일까. 나는 어느 만큼이나 내 삶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천민자본주의라는 홍수에 하염없이 떠밀려 다니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월출산 자락에서 유 교감을 만나고 돌아서는 동창생의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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