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복지’ 현장을 가다

주 5일 운영되는 기찬밥상에서 어르신들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은, 고령자복지주택 거주자와 일반인에게 판매하고, 장애인복지관을 이용 장애인의 도시락으로도 제공된다.
주 5일 운영되는 기찬밥상에서 어르신들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은, 고령자복지주택 거주자와 일반인에게 판매하고, 장애인복지관을 이용 장애인의 도시락으로도 제공된다.

평일 오전, 11시 10분부터 아파트 1층에 줄이 섰다. 30대 청년에서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행렬이었다.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이채로운 광경이 영암읍 고령자복지주택(영암남풍 LH 2단지) 후생복지관에서 벌어진 이유는 뭘까. 

시계가 11시 30분을 가리키자, “입장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로 실내로 들어섰다. 갓 지어낸 밥과 따끈한 국과 스프가 김을 뿜어내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리가 차서 식당 밖 대기 줄에서 잠시 기다려야 하는 이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60석의 테이블이 있는 한식뷔페 ‘기찬밥상’은 단정했다. 입구 반대편 통창으로는 월출산 천황봉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그 옆 벽면에 걸린 추상화 액자 3점은 깔끔한 실내에 모던한 분위기를 더했다. 도심 직장가의 인기 있는 뷔페를 옮겨놓은 듯했다. 

감자동그랑땡튀김, 소세지볶음, 돼지갈비조림, 양배추쌈, 도라지무침 등 10여 가지 반찬, 흑미밥과 흰밥, 미역국을 손님들은 자기 접시에 골라 담았다. 다들 그릇이 넘치도록 음식을 담아 테이블에 앉았고,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식당에서 말이 없다는 건, 오롯이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 그것도 남녀노소 여러 세대가 어울려 점심을 먹는 모습은 소문난 맛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개업한 지 한 달 남짓의 기찬밥상은 맛집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영암읍에서 일하는 30대의 한 사회복지사는 “소문 듣고 왔다. 이미 영암읍에서 기찬밥상은 유명하다. 깔끔한 음식이 맛까지 있었다. 또 오고 싶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암읍민 이국희(64) 씨는 “광주에서 학교 다닐 때 영암에 오면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이 딱 이랬다. 국도 주변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는 맛을 강조하려고 간을 세게 하고, 양념도 많이 친다. 기찬밥상 음식은 이런 치우침이 없으면서도 고향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지는 정갈한 맛이다”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맛집, 기찬밥상은, 정여임(71) 씨를 포함한 영암 여섯 어르신들의 일터다. 어르신들은 영암시니어클럽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150~200인분의 점심을 준비한다. 

이 중 50인분 정도는 장애인복지관에 도시락으로 배달된다. 식당을 찾는 고령자복지주택 주민은 10~20명가량이다. 결국 기찬밥상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일반인인 셈이다.  

기찬밥상 맛의 비결은 어르신들의 경험. 고기반찬을 담당하는 정 어르신은 과거 낭주고등학교 급식실과 지역 장례식장 주방 등에서 일했다. 식당 일을 접고, 1년 남짓 쉬다가 영암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기찬밥상과 인연을 맺었다. 함께 일하는 다섯 어르신들도 평생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손맛을 자랑해 왔다고. 

일터가 없었다면, 어르신들의 경험은 그대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기찬밥상이 있어서, 영암의 손맛은 누군가에겐 고달픈 허기를 달래는 끼니로, 다른 누군가에겐 고향을 떠올리는 엄마표 점심으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단돈 7,000원이라는 가격에.  

정 어르신은 “깔끔하고 맛있다고 손님들이 너무 좋아한다. 잘 먹었다고 말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힘들어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고, 계속 여기서 일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선 8기 영암군은 ‘생산적 복지’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동안 ‘시혜적 복지’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어르신들을 지역생산의 주체, 복지의 공급자로 세우겠다는 의미였다. 

이런 기조에 따라, 어르신들이 평생 쌓아온 경험을 지역사회에 나누며 존경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가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영암군이 기찬밥상을 생산적 복지 대표 현장으로 첫손가락에 꼽는 이유다. 

짧은 기간 운영으로도 기찬밥상은 1석 3조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어르신은 일자리에서 보람과 존경을 얻고, 군민은 저렴한 가격에 엄마표 밥상을 맛보고, 영암군 지역사회는 세대 간 안부와 소통의 장을 확보했다.  

기찬밥상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체력을 감안해 영암시니어클럽은 3월까지 어르신을 10명까지 늘려 격일 근무제로 바꾸기로 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노인일자리 시장형사업단 인프라 지원 공모사업’ 선정으로 문을 열어서 꾸준히 경쟁력도 높여 나가야 한다. 여느 밥집처럼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다. 

어르신들과 함께 기찬밥상을 차려내는 김보은 영암시니어클럽 팀장은 지역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는 “공모사업비로는 인건비와 재료비 조달도 빠듯하다. 농산물을 포함한 식재료 후원이 필요하다. 기부 영수증 처리도 할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부 바란다”고 전했다. 

끝으로 정 어르신의 당부도 이어졌다. 어르신은 “더 좋은 식재료를 아낌없이 써서 더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싶다. 하지만 밥값은 싸고, 물가는 너무 올랐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낼 수 있도록 영암군과 지역사회에서 지원을 팍팍 늘려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