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근    

영암읍 교동리生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부회장

슬프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다.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들이 신기루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이제는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슬픔과 두려움으로 변해 스멀스멀 뇌리를 점령한다.

작년 시월 거름에 하나밖에 없던 처남이 세상을 떠났다. 이곳저곳으로 전이된 암을 6년여 견뎌냈는데도, 첨단을 달리는 로봇 수술을 여러 번 했음에도, 절실하게 간구하고 기원하며 하느님께 매달렸지만 유명을 달리했다. 투병 중인데도 구수한 전라도 유머가 그의 입 주위를 떠나지 않았고, 항상 충만한 사랑으로 철 따라 완도김, 대봉감, 황토 고구마며, 살구를 바리바리 형제들에게 보내주던 처남이었는데, 그렇게 사랑으로 충만했던 그가 떠난 빈자리는 횡하니 쓸쓸하고 적막하다. 

구정 즈음, 장인어른의 기제사 때문에 찾은 고향도 밝은 소식은 없었다. 큰 동서가 병상에 누워있었다. 동서 역시 넉넉하고, 항상 허허허 웃는 호인(好人)의 성격인데도 병은 낙천적인 성격도 무시하고 덮쳐온다. 

올라오는 길,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님 역시 거동이 예전보다 더 불편해지셨고, 야위어지셨다. 만감이 교차한다. 점점 두렵고 허전해지고, 슬프다. 

70이 넘어가니 일년 일년이 다르다. 우선 몸의 유연성과 탄력이 떨어진다. 자신감도 슬그머니 없어진다. 주위에 친구들이 생을 달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는 더더욱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빈도가 잦아졌다. 

친한 친구 중에 이런 녀석이 있었다. 낙천적이고, 자신감이 충만한 녀석이었는데도 크게 한 번 앓고 나더니 병원 순례를 시작했다. “낙천(樂天)은 슬금슬금 어디로 도망가고, 불안과 걱정이 온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했어. 배가 이유 없이 더부룩하고, 이쪽 관절이 쑤시면 저쪽 관절은 뻣뻣해. 어깨가 시리고 아프며, 눈이 흐릿하고, 왠 날파리들이 어른거리고, 가는 귀가 먹는 것 같더니 모든 소리들이 짜증스럽게 들려.”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검사만 자꾸자꾸 늘어간다고 하소연했다. 정말 병원 신세는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던 자신감에 차 있던 녀석이 초췌해져서 사소한 신체 문제도 무슨 큰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병원과 영양제에 의존한 사람이 되어버리더니 어느 날, 슬그머니 세상을 떠나버렸다. 참으로 허망하지 아니한가.

이 친구처럼 병원과 영양제에 의존하는 증상을 사회학 용어로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라고 한단다. 노령화 초기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고, 고령화 시대에 일반화된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나 의사들은 말한다.

“나이가 들면 근육과 횡경막이 약해져 평소보다 조금만 더 움직여도 숨이 찬다. 위장은 움직임이 느려지고, 오래된 고무줄처럼 탄성도 약해져서 음식을 조금만 더 먹어도 부대낀다. 대장은 느릿하게 움직여서 식이섬유라도 줄면 당연히 변비가 오기 마련이다. 담즙이 줄어드니 기름진 고기의 소화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런 증상과 불편함은 나이 듦을 인정하고, 좋은 생활 습관으로 극복하고 감소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위가 더부룩하면 연한 음식으로 소식(小食)하라. 근육이 감소하면 관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골다공증이 오는 것도 당연한 노화의 증상이라 생각하라. 이런 것을 극복하겠다고 영양제를 욱여넣으면 간(肝)이 혹사한다. 이런 여러 증상이 나타나니 난 환자고, 따라서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헷갈린다. 역발상이 필요해진다. 가물가물해지는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숨어 있는 내 낙(樂)을 찾아내어 내 나이가 어떠냐고 소리치며 남은 삶을 즐길 일이다. 내일 죽더라도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이 자체가 환희가 아닌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더라도 살아있는 이 인생이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스스로 감탄하며 용기를 낼 일이다. 걱정은 근심을 낳고, 근심은 짜증과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공자는 일찍이 네 가지를 끊었다 한다. 무의(無意), 무필(無必), 무고(無固), 무아(無我)를 이야기했다. 무의란 사사로운 의견이 없음을 뜻하고, 무필은 반드시 해야 함을 뜻하고, 무고는 지나치게 고집함을 뜻하며, 무아는 내가 아니면 안 됨이 없음을 말한다. 사사로운 의견을 줄이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각박해 하지 말며, 자기만 옳다고 고집부리지 말며,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한다는 생각을 하라는 것일 게다. 선택은 자유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늦을 뿐이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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