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이 기 홍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수작을 걸다’라는 말이 있다. 속셈, 또는 꿍꿍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개수작’이니 ‘허튼수작’이니 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수작에 걸려든 사람이 많음이 분명하다. 수작은 한자로 건넬 수(酬)에 따를 작(酌)을 쓴다. 쉽게 말해, 잔을 돌려 술을 권하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를 윤기 나게 빗어 내린 기녀가 비단 방석에 올라앉은 준수한 선비에게 교교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술잔을 건네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 선명하다. 

지레짐작으로 흔히 쓰이는 가늠하다는 뜻의 ‘짐작’이란 말도 술에서 나왔다. 도자기 병에 담겨있는 술의 양을 알지 못해 조심스럽게 술을 따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래 짐작은 함부로 하면 안 되고 진중하게 해야 한다. 짐작은 머뭇거릴 짐(斟)에 따를 작(酌)을 쓴다. 마음을 결정한 것을 ‘작정’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술에서 나왔다. 상대방의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골탕이나 먹일 요량으로 따르는 술의 양을 미리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를 작(酌)에 정할 정(定)을 쓴다. 반대로 상대의 주량을 헤아려 술을 알맞게 따르는 것을 ‘참작’이라고 하는데 가슴으로 느껴지는 정상을 참작한다는 말에 자주 쓰인다. 간여할 참(參)에 따를 작(酌)을 쓴다. ‘작량’을 잘한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따라야 되는 술의 양을 잘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진 옴천면장이 맥주 한 병으로 열두 잔을 따랐다고 하는 바로 그 경지를 말한다. 따를 작(酌)에 헤아릴 량(量)을 쓴다.  

왜 내밀한 인간사에 술로 만들어진 말이 유난히도 많을까. 인간이 만든 음식 중 가장 잘 만든 것이 술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가장 잘 만들어진 술상을 차려놓고 수작(酬酌)을 걸어 환심을 산 다음, 상대방 호주머니를 짐작(斟酌)해 보고 우려먹을 양을 작정(酌定)해 야금야금 빼먹는데,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자 정상을 참작(參酌)하여 작정한 것보다 덜 볼가 먹고 물러난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작량(酌量)을 잘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술상도 차려놓지 않고 수작을 거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혼란스럽다.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말도 곱씹어봐야 한다. 인간미의 그 미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울 미(美) 같지만 혀끝에 느껴지는 맛 미(味)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잘 생긴 것보다는 맛이 있어야 진국이다. 겉은 번지르르해 눈은 호강하지만 누구에게도 실속은 없는 인간은 인간미(人間味)가 없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을 줄 아는 여인, 맛있는 술과 맛있는 말을 쫀득쫀득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내가 최고의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다. 그래 요즈음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도 멋이 아니라 맛이라 하지 않던가. 노래는 맛있게 불러야 제격이지 멋있게 불러봐야 별 울림이 없다. 결국, 인간은 가장 잘 빚은 술과 함께 맛으로 인간사 내밀한 일을 진행시켜야 인간미(人間味)가 넘치는 사람이고 또 성사되는 것이지, 인간미가 인간미(人間美)인 줄 알고 겉만 번지르르하면서 맹물로 진행시키면 누가 살갑게 받아주겠는가.

요즘은 선거철이라 그런지 이곳저곳에서 수작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으로는 전화 수작질이 걸려오고, 휴대폰으로는 문자 수작질이 들어오고, 평소 왕래가 뜸했던 지인으로부터는 뜬금없이 안부를 묻는 안부 수작질이 밀려온다. 수작질의 수자가 맹물 수(水)자 인줄 알고 술 향기도 없는 수작질이 부쩍 늘어나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서 그런지 그 옛날 이몽룡(李夢龍) 시대의 은근한 수작질이 사뭇 그리워진다. 날아갈 듯 차려입은 한량이 어느 기방에서 깔끔하게 차린 술상을 앞에 놓고 춘향모 월매의 손을 잡아끌어 넌지시 잔을 건네주며 주고받는 말이 일품이다.

   “오야 춘향모, 자네가 내 장모가 되면 못쓰것는가?”
   “아따, 못쓰지라우!”
   “오야 월매, 그러지 말고 내 술 한 잔 더 받고 잘 생각해 주소......”
   “워매, 영판 성가시네. 이를 우째야쓰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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