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출신 고 정선엽 병장

1979년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의 투항을 거절하고 총에 맞아 숨진 금정 출신 정선엽(사진) 병장의 죽음을 ‘총기 오인 사고’라고 왜곡했던 국가의 책임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2단독 홍주현 판사는 지난 5일 정 병장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심 재판에서 정부가 원고 4인에 대해 각각 2천만 원, 총 8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1977년 7월 입대해 국방부 헌병으로 복무한 정 병장은 1979년 12월 13일 새벽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서 전두환 당시 군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반란군의 총탄에 숨졌다. 정 병장은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를 지키다 전사한 유일한 희생자다.

지난해 말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한 이후 큰 흥행을 거두면서 영화 후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정 병장의 생애도 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영화에서 반란군의 명령을 거부하다 총격에 맞아 숨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2022년 12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다르게 기록돼 있었다. 당시 국방부는 정 병장이 계엄군이 오인해 발사한 총에 맞았다며 전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군인사법상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전사자로 구분한다.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을 순직자로 보는데, 당시 국방부는 정 병장의 사망이 이와 같았다고 판단했다. 국방부는 계엄군이 오인해 총기 사고로 정 병장이 사망했다고 공식 문서에 기록했다.

1997년 대법원이 군사반란 관련 재판에서 전두환의 초병 살해 혐의를 유죄로 확정한 뒤에도 국방부는 정 병장을 전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사이 정 병장의 어머니 한점순 씨는 2008년 사건 진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정 병장은 2022년 12월 국방부 산하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통해서야 최종 전사자로 인정됐다. 이때 비로소 정 병장이 반란군에 대항하다 총탄에 맞아 숨진 사실이 확인됐다. 그가 사망한 지 43년 만이었다. 이후 유족은 국방부 등이 관련 배상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정 병장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는 현행법상 ‘이중배상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병장은 1956년 6월 금정면 안로리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금정북초등학교(18회)를 거쳐 조선대 전자공학과 재학 중 군에 입대,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헌병으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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