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일 환   

  서호면 산골정마을生
​  ​광주 ‘행복한 요양병원’ 행정원장
 

어린 시절 산골정에는 텔레비전이 없어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던 뉴스도 라디오를 통해 들었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던 홍수환의 4전 5기의 권투도 라디오로 들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우산양반집에 처음으로 금성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4개의 다리가 달린 상자에 달린 자바라를 좌우로 열면 화면이 나온다. 여름이면 마당에 덕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우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보았고 겨울이면 친척들만 겨우겨우 들어가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9시 뉴스가 모두 귀가하는 약속을 지켰다. 아∼아하∼아아아아∼하고 외치는 ‘밀림의 왕 타잔’과 전 국민을 반공방첩의 전사로 만든 ‘전우’ 미국의 위대함을 알려준 ‘600만 불의 사나이’ 등을 금성 흑백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범죄자를 잡는 ‘수사반장’과 간첩을 잡는 ‘113 수사본부’도 인기였다. 라디오로 듣던 ‘전설 따라 삼천리’를 텔레비전으로 ‘전설의 고향’을 보았다. 우리 동네의 모습이 나오는 ‘전원일기’는 신기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박치기왕 김일의 레슬링에 이노키에게 승리할 때는 모두가 애국자가 되었다.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바뀌고도 몇 년이 지나서 우리 집에도 칼라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고등학교 다닐 때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하얀 셔츠에 검정 조끼를 입고 시구를 하던 전두환의 대머리를 칼라로 처음 보았다. 동대문구장에는 관중보다 경호원이 많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이칼이라고 하였다. 가끔씩 동네에 노는 형태 아제는 양동이를 뒤집어 놓고 앉아서 책보를 목에 두르고 머리를 잘랐고 새터에 사는 신동양반은 어두운 안방에 앉혀 놓고 담배를 피면서 머리를 잘랐다. 신동양반에게 마지막 머리를 자를 무렵에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왔다. ‘그때 그 사람’을 들을 때마다 신동양반이 생각난다. 

설날 산골정은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닌다. 자자일촌이나 우리 집안과 다른 집안의 차이를 두고 첫째 날 다닐 집안, 둘째 날 다닐 집안, 셋째 날 다닐 집안을 구분하여 다녀야 했다. 누구 집은 음식도 먹었고, 누구 집은 세배만 하였다. 둘째 날이나 세째 날에 가도록 되어 있는 집안도 연필이나 사탕을 주면 첫째 날에 세배를 하였다. 어른들은 제사보다 젯밥이 먼저고 우리들은 세배보다 선물이 먼저였다. 

최근에는 99가구가 살았던 산골정도 70~80 넘은 노인들만 사는 동네로 전락했다. 애기 울음소리와 어린아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 지가 30년이 되었다고 한다. 설날이나 추석날도 고향을 찾는 후손들이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오히려 명절이 되면 어른들이 서울로 상경하여 빈집이 더 많다고 한다. 세배를 할 자손도 성묘를 하는 후손이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추석 보름 전쯤에 합동으로 조상묘를 벌초한다.

그리고 소중한 추억이 산자를 먹었던 기억이다. 문산댁이 눈처럼 희고 소담하게 만든 전라도 산자(馓子)를 큰형수가 맥을 이어 산골정 산자를 만들고 있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시루에 쪄서 얇게 밀어서 말린다. 다시 기름에 튀기고 다시 물엿을 붓으로 바른 다음 매화 모양의 튀밥을 묻힌 것이다.

설을 앞두고 산자 먹던 추억이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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