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生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부회장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해. 갑진(甲辰)은 푸른 용으로 육십갑자의 41번째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만나 청룡을 의미한다. 더욱 청룡은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봄을 상징하고, 물을 다스려 모든 생명의 탄생을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꿈과 희망을 갖고 도전해 볼 만도 하다 하겠다.

새해 첫날, 해맞이하려 아파트 옥상을 올라갔지만, 해는 빠꼼이가 되어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구름과 한강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시야를 가려 감질나게 한다. 첫날부터 꽝이다. 그래도 구름 사이 언뜻언뜻 비치는 햇살을 향해 으레껏 꺼내들던 똑같은 레퍼토리를 중얼거려 본다. ‘하느님, 천지신명! 올 한 해도 이렇게 숨 쉬고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도 우리 식구 모두 지켜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보듬어 주세요’

그리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계획했던 버킷리스트들을 조곤조곤 뇌까려 보았다. 버킷리스트는 2007년인가, 영화 ‘The Bucklist’에서 유래되었다. 사랑하는 두 주인공이 죽기 전 이루고픈 여러 가지 목표와 경험을 담은 영화였다. 그래서 ‘버킷리스트’ 이 말은 그 후 널리 사용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있게 살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살아가는 목표와 꿈을 담은 목록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나는 2012년 2월, 내 42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내 노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기, 날마다 중국어 공부하기, 매일 가족에게 요리해 주기, 하루하루 감사하기, 날마다 붓들기, 나 자신 사랑하기, 자주자주 웃기, 발끈한 성질 죽이기,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들에게 빚 갚기, 헬스와 골프로 건강한 몸만들기, 북유럽, 호주·뉴질랜드, 미동부와 캐나다 여행하기였다. 돌이켜 보니 절반은 넘게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기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힘들었다. 거의 모든 일을 밤에 처리하는 것이 몸에 배어 거의 지키지 못했다. 중국어 공부도 둘째와 손녀들이 십여 년 동안의 북경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람에 시들해졌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주자주 웃는 것은 아주 잘 한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평생교육원을 삼 년여를 다니며 붓을 들고 여러 차례 공모전에 수상을 하였지만 날마다 화필을 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가끔 인사동에서 초대장이 날아들면 화가들 그림을 들여다보며 결심을 다지긴 하였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다.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들에게 빚 갚기는 그런대로 잘한 것 같다. 우연히 가까운 곳에 작은 아버님이 사신다. 작은 아버님은 정이 깊으셔서 내 젊은 날 어려웠던 시절을 훈훈하게 해 주신 분이시다. 학창 시절 가끔 찾아뵈면 꾀죄죄한 조카에게 옷이라도 한 벌 입히려 하셨고, 없는 형편임에도 용돈으로 쓰라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 주셨던 분이시다. 요즈음은 내가 용돈도 드리고, 식사도 하고, 조카들 학비도 쥐어주고. 내가 받았던 도움과 고마움을 되돌려 준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다. 역시 가족을 위한 요리하기는 빼놓을 수 없다. 건강을 위해 헬스와 골프도 마찬가지다. 매사 감사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밥도 잘 사주고, 아침 일찍 일어나기도 시도해 봐야겠다. 야마호카 소하치의 ‘대망’ 26권 다시 읽기. 이 책은 이제까지 세 번을 독파하였다. 올해 네 번째 독파인 셈이다. ‘대망’은 일본 전국시대의 이야기이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등이 활약하던 일본의 15∼16세기 난세를 평정하고 통일을 이루어내는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대하소설인데, 난 이 소설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무수한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내 삶을 복기할 수 있어서 좋다. 

목민심서도 다시 읽을 터다.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진다’고 한 다산(茶山)의 경구가 황홀해서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모든 사람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이며, 자기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제 코로나로 인해 못했던 여행도 계획해야지. 올해는 1월부터 골프 여행이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초청 골프 라운드가 15일부터 25일까지 쿠알라룸푸르 인근 스타필드, 숭가이롱, 임피안, 마인즈cc 라운드와 관광이 잡혀 있다.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짐을 챙기면서 가슴은 어렸을 적 소풍을 앞둔 전날처럼 두근거리고 날아갈 듯 기쁘다. 

그리고 올해는 꼭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자. 2021년 이곳을 둘러보려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포기했었다. 노을 진 알함부라 궁전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파티마 대성당 앞 노천카페에서는 에그타르트도 먹어보자. 험프리 보카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애절한 사랑을 속삭인 카사블랑카 골목길도 걸어보자.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들을 팔 벌려 선물처럼 받아 들이면서 가끔가끔 힘이 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보자. 이하이의 ‘한숨’이 귓전을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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