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 전 목포시 교육장
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유년시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월출산 천황봉에서 둥둥 떠오를 때 내 가슴은 마구 쿵쾅거렸다. 특히 보름달이 서호강에 잠기고 월출산이 하늘에 그 묵직한 실루엣을 남길 때는 내 가슴은 더욱 쿵쾅 질을 했다. 그 장엄함과 처연하리만치 아름다웠던 아시내 초저녁의 감흥은 언제나 나를 유년시절로 이끈다. 지금도 60여 년 전처럼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떠오르건만 내 가슴은 그 옛날처럼 쿵쾅거리질 않는다. 월출산 달은 옛 달이지만 고희를 넘긴 내 가슴은 옛 가슴이 아니다. 나보다 한 세대 위인 아시내 사람 백암 이환의는 나처럼 쿵쾅 질을 견디지 못해 영암아리랑이라는 노랫말을 남겼다. 월출산 구정봉의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할 때까지는 휘영청 보름달은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 

월출산은 노령산맥 줄기에 있는 산으로 평야 한가운데서 나 홀로 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산이다. 영암군의 군서면과 영암읍, 강진군의 성전면에 위치한 산으로 면적은 56.1㎢이며 화강암이 주류를 이룬다. 백제시대에는 달라산(達拏山), 신라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혹은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렀다. 1973년 1월 29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6월 11일에는 다시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달이 뜨는 산이라는 월출산은 영암에서는 달이 뜨지만 강진에서는 달이 지기에 이름 속에 영암 산이 돼버렸다. 영암의 지명이 신령 영(靈)자 바위 암(巖)자로 되어있는데 신령스런 바위로 이뤄진 월출산이 자리하기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월출산에는 도갑사와 천황사 그리고 무위사가 있다. 천황봉과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이 주 봉우리를 이룬다. 월출산 속에는 이름도 아름다운 ‘하늘아래 첫 부처 길’이 있어 길을 따라가면 금의환향하겠다는 연인의 맹세가 숨겨진 초수동 범바위도 바라볼 수 있고, 마애여래좌상 석불을 만나 합장을 할 수도 있다. 

영암교육청 청사 교육장실은 2층에 자리하는데 전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리창에 비치는 월출산 전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교직 수행 시 업무 관계로 나는 영암교육청 청사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최모 교육장 시절 교육장이 자기 자리에 앉아보라고 권하기에 앉아 유리창 액자에 담겨진 월출산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은 압권이었다. 최모 교육장은 자신은 매일 아침 자리에서 월출산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경배를 드리고 하루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 후 김모 교육장으로 바뀌었을 때 교육장실에 들어갔더니 집무용 책상이 월출산 쪽이 아닌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책상의 방향을 바꾸었는지 물어봤더니 자신 같은 소인이 월출산과 맞짱을 뜰 수는 없기에 비켜 앉는다는 대답이었다. 한 분은 월출산이 너무나 신령스런 산이기에 매일 아침 경배를 드리기 위해 바라보고 앉고, 또 한 분은 월출산이 너무도 신령스런 산이기에 감히 맞짱을 뜰 수 없어 비켜 앉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월출산은 신령스런 산임에 분명하다. 풍수지리에서는 석산의 기(氣)는 토산의 기보다 세배가 세다고 하는데, 월출산은 바위산이요 최고봉인 천황봉의 높이가 809 m이니 토산으로 치면 2,400 m의 기가 나오는 산인 셈이다.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월출산이 남한에서는 가장 기가 센 산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월출산에서는 비나리가 성행하고 꿈을 꾸는 자는 기를 받기 위해 반드시 오른다. 내가 전라남도교육청 근무시절 모 국장은 아침나절 천황사에서 출발해 천황봉을 거쳐 점심 때 도갑사에 이르고, 도갑사 인근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갈대재를 거쳐 천황봉에 올라 저녁 무렵이면 천황사에 도착해 하루에 두 번 기가 뭉친 천황봉을 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천황봉을 백번 오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강인한 체력에 놀랐고 무서운 집념에 탄복했다. 난 그때 분명 모 국장은 큰 뜻을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모 국장은 큰 뜻에 도전하기도 했었다. 모 고위층 역시 천황봉을 오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큰 꿈을 키워갔다. 누군가 큰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구정봉과 천황봉을 오르니 그 봉우리를 품고 있는 월출산은 분명 타오르는 야망이 엉긴 산임에 분명하다. 

나 역시 크고 작은 일을 당할 때마다 비나리를 한다. 작은 일에는 아시내 돌탑이나 돌솟대에 비나리하고 좀 더 큰일에는 월출산 주지봉 아래 성기동에 가서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비나리 한다. 내 어린 시절에는 학교 소풍을 갈 때 도갑사로 자주 갔는데 그 때는 도선국사 수미선사 비에도 오르고, 절 마당에서 술래잡기도 했다. 또 추석 명절이면 동무들과 함께 주지봉에 올라 저 멀리 강진만도 바라보고 월대암에도 올라 소원을 빌기도 했다. 월출산 주지봉 산하 동자동과 성기동에는 조상님이 모셔져 있는데 종손인 큰집은 동자동 묘소를 관리하고 나는 주로 성기동 묘소를 살핀다. 그러다 보니 자연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성기동과 동자동을 바라보게 되고 자연 월출산을 향해 경배를 하게 된다. 월출산의 웅장함은 항상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여기저기 자리한 거대한 천년바위는 나를 침묵하게 만든다. 유년 시절에도 봤던 월출산의 그 변함없는 모습에 나는 항상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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