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 덕진면 노송리 生​​​​​​ 전 서광초 교장 한국전쟁희생자영암군유족회장
신 중 재    덕진면 노송리 生​​​​​​ 전 서광초 교장 한국전쟁희생자영암군유족회장

아내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평소 동경하던 나라들의 이색적인 풍경들은 온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다. 예년보다는 국경을 넘을 때, 여권검열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러지 않는 나라가 있었다. 오후 동안 내내 푸른 초원을 눈에 넣고 마음의 풍요를 느끼며 꿈속 같은 나라 헝가리에 입국하여 숙소에 짐을 푸니 가이드가 여권을 모았다. 일행 중에서 중절모를 쓴 노익장이 여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모두는 깜짝 놀랐다. 가이드가 그렇게 여권 간수를 잘 하라고 귀가 닳게 말했는데 그걸 분실하다니…, 

이제 여권 분실에 대한 부부간의 공방이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그분들의 태도를 주시했다.  “여권을 국경 통과할 때 제시하고 돌려받아 조그마한 손가방 속에 넣고 난 후, 중간 휴게소에서부터는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의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 했으나 노익장은 넉넉한 미소로 부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여행을 다녔지만 한 번도 당신이 이런 실수를 한 일이 없었는데...”

아내를 오히려 위로했다. 모두는 깜짝 놀랐다. 저런 여유가 어디서 생긴 것일까? 더군다나 여권을 찾으러 가려면 4시간 이상 되돌아가야 하고 가 봐야 찾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이제 여행은 망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호텔로 들어올 때, 우리 일행이 아닌데 미리 숙소로 와서 그 노익장을 반갑게 맞이하는 중년 한 분이 있었다. 그분은 헝거리 현지에 사는 사람인데 내일 한국대사관이 마치 숙소 가까운 곳에 있으니 찾아가서 오전 여행을 포기하고 제작하기로 했다고 했다. 

아침 식사 후, 짐을 챙기며 다음 여행지로 출발하는데 그분들은 어제저녁에 온 분과 함께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그 후로 3시간 정도가 흘렀는데 새 여권을 만들어 밝게 웃으며, 우리와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다 더 신속하게 제작하여 왔다. 참 신기했다. 어떤 덕을 쌓은 분들일까? 여권 잃을 것을 미리 대비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저런 지인을 어떻게 이국에서 적절한 타임에 만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내가 젊은 시절, 여고에서 근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을 가서 꿈을 펼치고 살 때, 그 젊은이가 우리 집 와서 며칠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가족처럼 숙식을 제공하고 잘 대해 주었던 것이 인연이 닿은 것 같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게 되어서 오늘 큰 은혜를 입은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 그렇지만, 여행객 모두는 이 노익장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노익장 부부는 여권을 잃어 순간적으로 괴로움을 당했지만 자기들의 옛날 선행 부부의 행적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며칠 동안 같이 간 여행객들에게 큰 교훈을 심어준 것 같아서 부럽기도 했고, 필자가 그런 처지에 놓였었다면 과연 그 노익장처럼 여유롭게 웃으면서 아내의 등을 다독이며 걱정 말라고 말 할 수 있었을까?  

“여권 그거 하나 챙기지 못하고 어디에다가 정신을 팔고 다니는 거야!”라고 했지 않았을까? 어려운 일이나 난감한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부부간에 대처하는 태도를 배우지 않았나,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옛날에 지혜로운 한 노인이 산기슭에서 여러 마리의 말을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키우던 암말 한 마리가 오랑캐 땅으로 도망가서 노인이 낙심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다. 

“축복이 될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후에 달아났던 암말이 준마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그 덕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니,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했다. 

“이 일이 재앙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 
그 후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므로 노인은 다시 낙심했다. 그런 후에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전쟁에 나가면 90%가 목숨을 잃었으나 그 아들은 끌려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중국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힌두교에서 베푸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나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불경에서는 선을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이승과 저승에서 모두 행복하다. 기독교에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축복이다. 작은 촛불을 켜고 어둠과 절망이 사라질 때까지 밝히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순간순간은 새로운 시작이다. 선한 행동으로 매일 매일을 새롭게 맞이하자. 

우리의 성공한 삶은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해 추구해 나아가며 자신을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구성원으로 만들어 갈 때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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