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동화책도 선보일 예정

을묘왜변의 호국영웅이자 조선 최초 의병장인 양달사의 업적을 사료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양달사 장군 문헌집’이 발간됐다.

양달사현창사업회(회장 장만채)에 따르면 문헌집은 제주양씨주부공파 문중의 전 양금호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남암공 사적’(南巖公 事蹟)을 이영현 영암학회장이 번역했고, 호남의병연구소 노기욱 소장이 감수했다. 1765년 여지도서와 1799년 호남절의록, 영암군지, 영암향교문헌록 등에서 인용한 양달사 의병장과 관련한 문헌들이 수록돼 있다는 점에서 1959년 필사본이지만 내용 면에서 여느 고문서보다 값진 사료다.

책에 수록된 15편의 글은 모두 1555년 5월 영암에서 벌어진 영암성 대첩에 집중돼 있다. 5월 11일 달량성을 침입한 6천여 왜구에 의해 전라도 10여개 성이 함락되었을 때 어머니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고 있던 전 해남현감 양달사가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를 구했음에도 아무런 포상이 없어 억울하다는 내용이다. 1797년 나주목사 임육이 쓴 양달사 행장(行狀)과 1804년 무안군수 이인채와 함평현감 오연상이 쓴 사적(事蹟) 등은 이들이 현직에 있으면서 쓴 글이고, 대사성을 역임한 윤득부의 묘지명과 한성우윤 출신 이기경의 남암공 전(傳), 조선 후기 도학자인 기학경의 후서(後序) 등도 당시 전라도에서 명망 있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책에 수록된 7편의 소지(所志, 탄원서)는 전라도 유생들이 양달사 의병장에게 포상을 내려줄 것을 호소하고, 1780년에는 전라도 유생 444명이 연서하여 관찰사에게 등장(等狀)을 올려 눈길을 끈다. 전주향교통문까지 합하면 의병장 한 명 때문에 전라도민들이 300여 년 동안 여덟 차레나 소지를 올렸다는 점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런 노력 끝에 양달사 의병장은 1847년 10월 19일 좌승지로, 형 달수는 사헌부 지평으로 추증될 수가 있었다. 이후 영암군에서 1971년 공적비를, 1974년 허련 전라남도지사가 순국비를 각각 건립했다. 영암교육지원청은 이달 중 ‘나라를 구한 양달사 장군’의 동화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