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병 연  사회복지학 박사​​​​​​ 전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청소년인권센터 이사장
강 병 연  사회복지학 박사​​​​​​ 전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청소년인권센터 이사장

한여름 길가 담장을 넘어 길가에 살짝 얼굴을 내미는 꽃 한송이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마음을 일으키는 능소화의 꽃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필자가 평소 좋아하여 기르는 능소화 꽃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능소화(凌霄花)의 한문은 능(凌)은 업신여길 능, 또는 능가할 능이고, 소(霄)는 하늘소이다. 넝쿨이 하늘을 향해 높게 오르는 특성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하늘을 능가하고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 된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개화 기간 내내 활짝 핀 꽃을 한여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다.

​​능소화는 중국 원산의 꿀풀목 능소화과의 덩굴성 목본 식물로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착 뿌리를 건물의 벽이나 물체를 타고 오르며 추위에 약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에서 자라고 꽃 모양은 진한 주홍색 꽃이 트럼펫 또는 나팔 모양으로 피어난다. 추위에 약하다 보니 다른 나무보다 늦게 싹이 나온다. 이것을 양반들의 느긋한 모습에 비유하여 또는 양반들이 이 꽃을 좋아했다 하여 ‘양반 꽃’이라고도 불렀으며,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영광, 또는 그리움이다. 꽃 이름의 뜻과 꽃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옛날에는 양반집에서만 키울 수 있다고 하여 양반꽃이라고 하며, 장원급제를 한 사람의 화관에 꽂아주어 어사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능소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미 위험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으며, 충매화이기 때문에 꽃가루가 바람에 날릴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개화 시기가 길다 보니 꽃잎이 떨어져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하는 단점도 있다.

자료에 나타난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았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 하게 된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을 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 내지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르지 못하고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고 한 그녀의 유언을 시녀들은 그대로 실행했다. 이듬해 담장 아래에 능소화가 피어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다.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이다.

아무튼,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하다. 한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한 명의 지아비 외에는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능소화와 연관된 문학 작품 중 시나 소설은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깊어가는 가을, 이해인 수녀의 ‘능소화 연가’가 생각난다.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들이/자꾸자꾸 올라갑니다/나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나에겐 기도입니다/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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