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서광초 교장
 한국전쟁희생자영암군유족회장

한국전쟁 때, 큰삼촌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고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에 총살당하고, 필자의 아버지도 스물여섯 살 때, 경찰에게 연행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행방일지’소설을 택해 읽게 된 것은 화자도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겠는가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였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내내 화자의 아버지처럼 ‘빨치산’ 활동이라도 하여 ‘빨갱이’라는 오명이라도 듣게 되었으면 필자는 덜 서러울 터인데 내 아버지는 너무 터무니없이 무고하게 생을 마감했기에 가슴에 응어리는 더 깊게 박혔다. 

큰삼촌과 아버지는 마르크스 레닌이 부르짖었던 공산주의 사상과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 마을에는 밤이면 밤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먹을 것 내놓아라. 돼지를 잡아 달라.”선량한 동네 사람들의 옆구리에 죽창을 들이대며 목숨을 노리니, 그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조금만 보탬을 주게 되면 금세 빨갱이가 되어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경찰에게 들통이 나서 잡히면 죽는 것이 다반사였다. 할 수 없이 밤에는 빨치산, 낮에는 군경 편에 서야 살아 남았으니…  

여순항쟁 때, 14연대에 제주도 진압 명령을 내렸으나 ‘같은 민족끼리 어찌 총을 겨눌 수가 없다.’거부하면서 지리산으로 철수한 군인들과 좌파세력들에게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았는가?  

화자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빨치산 동지의 부인이었지만 친구가 죽으니 아버지와 재혼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빨치산 죄목으로 감옥살이를 마치고 농사를 지었으나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으로 실패를 거듭한다. 옥살이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정자까지 잃게 되었으나 한의사의 도움으로 딸을 얻는다. 화자는 빨치산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딸로서 애정 표현을 하고 그런대로 친하게 지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아버지가 갑자기 죽는다. 부모가 빨치산 활동을 하여 지목받았고 딸도 치명적인 피해를 받는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므로 상심이 컸다.

아버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얼마나 되겠느냐?’라고 생각했으나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다가 교복이나 벗고 피우라고 꿀밤을 맞았다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를 비롯해서 많은 친척들, 국회의원, 빨치산 동지들, 첫 부인의 처제, 연좌제의 피해자 사촌 길수 오빠까지 조문을 와 주어서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이해해 갔다. 각양각색의 조문객을 만나 정겨운 이야기를 글로 담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빨갱이로 살면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필자는 군 유족회장을 맡아 ‘진실규명신청서’를 진화위에 제출할 때, 많은 증인들에게 전쟁 당시의 증언을 들었다. 이웃 군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경찰의 수색으로 빨치산들이 큰 피해를 보니 그들은 마을로 내려와서 경찰 친척이나 같은 마을에 살던 무고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창으로 찌르고, 낫으로 목을 자르고, 칼로 배를 갈라 창자가 튀어나오게 하고, 도끼로 머리를 내리쳐서 논두둑에 버려 잔인하고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니…, 이 비극을 어찌 한단 말인가?    

화자는 평소 아버지의 소원처럼 유골을 백운산에 묻지 않고 주 활동 무대였던 곳에 뿌림으로 드디어 아버지는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사촌 오빠는 빨갱이 작은아버지를 둔 탓으로 육사에 합격했지만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사촌 오빠의 앞길이 막히니 큰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된다. 필자도 연좌제로 교직 생활 내내 인사기록카드에 부역혐의자 가족, 주의할 인물로 빨간 딱지가 붙어 다녔고 수시로 감시를 받았다. 지금도 국가공무원 퇴직자로서 사회주의를 찬양하거나 좌파 세력이라는 오명이 씌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하면서 살아간다.

필자의 큰삼촌이나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한 사실은 확실하지도 않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것인지도 전혀 모른다. 죄목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죽임을 당하여 7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도 그 진실을 밝혀보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화자는 3일 동안 장례식장에 찾아온 조문객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행적을 하나씩 알게 되어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원망보다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와 화해하며 좋은 결말을 보았다. 자식으로서 마음이 흐뭇했다. 쥐고 있던 아버지의 유골에서 차츰 온기를 느끼게 되었다. ‘빨갱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는 나의 아버지!’
(2023년 진천의 책, 전국글짓기 공모. 특별부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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