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68] 고대 동아시아 해양문명의 허브, 영암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가 확정된 가운데 건립 후보지로 선정된 삼호읍 나불도 전경. 나불도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문화의 시발점이다.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가 확정된 가운데 건립 후보지로 선정된 삼호읍 나불도 전경. 나불도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문화의 시발점이다.

지난 10월 6일 오후 1시 30분 시종면 복지회관에서 ‘마한 대외교역로와 영암’이라는 주제로 한·중 학자들이 모여 마한 시기에 이루어졌던 대외 교류의 양상을 밝히는 세미나가 열렸다. 특히 이날 세미나는 10월 6~7일 마한축제와 함께 열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의 축하와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어서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 아무쪼록, 이번 축제가  ‘마한의 심장, 영암’의 정체성이 더욱 빛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불도는‘신의 한 수’

이번에는 필자가 세미나에서 기조 발표한 ‘고대 동아시아 해양문명의 허브, 영암’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필자가 몇 차례 다룬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독자들이 ‘영암 마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지난번 국립마한센터 후보지로 ‘시종’이 아닌 ‘나불도’가 선정됐는가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이가 적지 않았다. 나불도가 후보지로 선정된 데 대해 나주 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영암인도 처음엔 어리둥절하게 생각하였다. 해안선 길이가 3㎞에 불과한 영산강 입구의 작은 섬이었던 ‘나불도’는 우리에게 생소한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적 흔적이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철기시대 패총과 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일찍부터 주목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영산강 하구둑 건설로 인해 간척지가 형성되어 있고, 전남농업박물관 등 시설이 들어서 있다. 

국립마한센터의 유력 후보지로 마한 유산이 집중된 시종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 또한 그러한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국립마한센터의 설립을 주관하는 곳은 문화재청이다. 문화재청에서 발주한 후보지 기준에는 역사성, 접근성 그리고 센터 근무 인원의 정주(定住) 여건 등 여러 요소가 있었다. 시종은 ‘역사성’은 완벽하나 접근성이나 정주 여건은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대표적 후보지로 영암군에서는 나불도를 1순위로 고려하였다. 필자가 문화재청이 내세운 기준인 후보지의 ‘역사성’‘타당성’‘상징성’ 등을 살피다 보니 나불도에서 시작된 영암 마한 문명이 시종에 이르러 활짝 꽃피워졌다는 가설이 명료하게 드러났다. 곧 전라남도가 지향한 ‘해상강국 마한’ 슬로건도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필자는 영암군이 시종 대신 ‘나불도’를 택한 것은 단순히 센터 후보지를 선택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넘어 ‘신의 한 수’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면 필자는 왜 나불도를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였을까? 

패총 유적이 확인된 곳

먼저, 영암의 지정학적 위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산)강이라기 보다 ‘영산내해’‘영암만’‘영산지중해’라고 부르는 넓은 바다의 하구에 위치하여 있는 영암은 바닷길을 통해 영산강 유역으로 진출하거나 중국과 왜, 가야가 교역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조선 후기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영암 남쪽은 월남촌, 서쪽은 구림촌으로, 신라 때 이름난 촌락이다. 이 지역은 서남해가 서로 맞닿는 곳이어서 신라에서 당으로 들어갈 때는 모두 이 고을 바다에서 배로 출발하였다”라고 했다. 즉 영암은 영산 지중해의 길목에 위치하여 물산의 유입 이동이 빠르다는 지리적인 이점이 있다. 게다가 다른 내륙의 평야 지대와는 달리 하천 부유물과 퇴적물 유입이 증가함으로써 하상보다 높아져 조수(潮水)의 영향을 받지 않은 비옥한 노출 간석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대방에서 왜에 이르는 항로가 (낙랑·대방)군→서해안→한국(韓國)→남해안→구야한국(가야)→대마도→왜”라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낙랑과 대방이 변한에서 철을 수입하였다는 기록 등을 통해 서남해의 연안 항로가 주요한 교역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남해 연안 항로의 중간지점에다 영산 지중해의 초입에 있는 영암은 일찍부터 항구가 발달하였는데, 덕진포, 상대포, 남해포 등은 마한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항구로서 기능하였음이 기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결절점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국립마한센터 후보지로 결정된 나불도이다. 나불도가 위치한 곳은 서해와 영산내해를 연결한 영산강 하류의 넓은 만이 내해를 형성하고 있어 강이라기보다 바다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곳에서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패총 유적이 확인된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해남 군곡리 패총, 보성 조성의 척령 패총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마한의 패총이 확인된 나불도의 지리적인 특성은 나불도 바로 이웃 현재 숭실대 박물관에 보관 중인 영암 독천에서 온전한 세트로 발굴된 독자적 청동기 문화를 설명하고 있는 거푸집을 통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거푸집 일괄 유물은 전남지역에서는 기원전 2세기 무렵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세형동검 문화가 유입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해준다. 다른 지역에서는 유물 출토만이 확인되는 데 비해, 영암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거푸집 일괄’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당대에 고도로 발달한 하이테크 기술이 발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 발달은 토착문화에 대륙과 해양을 통해 유입된 문물을 접목한 결과라 하겠다. 

역사성이 오롯이 드러난 곳

이처럼 토착문화에 해양을 통해 유입된 외래문화가 접목되면서 새로운 문명을 이룬 흔적은 서호면 엄길리 지석묘 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곧 엄길리 지석묘 군에서 확인된 개석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이 혼합된 해안을 따라 분포한 복합형 고인돌과 삼각형 점토대 토기 문화는 해양성을 기반으로 새롭게 형성된 마한 초기의 지석묘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영산 내해를 통해 대륙과 해양의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문물이 꽃피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유물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영암이다.

이처럼 나불도는 영산 내해를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 문명의 시발점으로, 이곳은 동아시아 고대 해양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영암 마한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곧 국립마한센터 후보지가 지니는 역사성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지리적으로 전남의 중심에 해당하여 지역의 균형발전 거점 역할에 적합한 곳이었다. 나불도는 무안, 함평, 나주, 광주, 담양, 화순 등의 관문인 영산강 입구에 있어 교류·융합의 마한문명의 통로 역할을 한 상징적 장소였다.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가야,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교류 융합을 통해 형성된 마한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다. 서해와 남해의 교차점에 위치하여 동아시아의 문화허브 기능을 한 마한의 상징을 구현하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기도 하였다. 해상을 통한 교류와 융합의 ‘영암 마한’과 전라남도 슬로건 ‘해상강국 마한’의 상징성을 그대로 드러낸 곳이다.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곳에 있는 후보지는 일본, 중국, 동남아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교류·융합되어 마한 문명이 창조한 곳에 위치하여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동아시아의 허브를 지향한 전라남도의 역사적 정체성의 표상으로, 현재 전라남도의 지향성과 일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지리적으로도 해남반도와 신안 일대에 산재한 마한유적과 영산 내해의 마한유적, 월출산 해양제사 유적을 포괄할 수 있는 센터 역할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결론적으로 800년을 이어온 전라도 정체성의 토대인 마한 정체성의 연속성을 확인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평소 필자가 국립마한센터 후보지 기준으로 삼은 역사성과 장소성을 모두 갖춘 공간이었다.<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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