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일 환 

  서호면 산골정마을 生
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  광주 행복한 요양병원 행정원장

어려서는 산골정 한가운데 있는 공동 우물을 이용했다. 문산양반은 물을 깃는 것이 일과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문산댁은 빨래는 빨래터에서 하였지만 길어온 물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였다. 

초가집에 전기가 들어오자 문산양반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에 우물을 팠다.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물이 나올 때까지 아주 깊게 팠다. 밑부분은 돌로 석축을 쌓고 윗부분은 시멘트 노깡을 올렸다. 

우리 집 우물은 가뭄에는 우물이 말랐고, 비가 오면 함께 우물이 넘쳤다.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도 거품이 나지 않았고 빨랫비누로 빨래를 빨아도 거품이 나지 않았다. 철분이 많아서 거품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 고향 산골정은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짜기 마을이 아니라 구리가 산출되는 곳에서 나는 푸른빛을 띤 누런색의 쇠붙이인 자연동이라 부르는 산골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실은 바닷가 마을이다. 

우리 집에 우물이 생기자 문산댁이 독천장에서 김치통을 사왔다. 절구통에 붉은 고추를 손톱 크기만큼 빻아서 열무김치를 담아 김치통을 우물에 넣어 한여름에도 시지 않게 보관했다가 먹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등목을 하기 위해 두레박을 우물에 넣다가 김치통을 깨뜨려 버렸다. 아버지와 형들은 온종일 붉은 고추가 석축 사이에 들어간 우물을 청소했다. 청소가 끝나고 내 몸은 푸른 하늘보다 푸르게 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푸른 멍은 가시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망측스러운 추억으로 열무김치는 물론 열무국수도 먹지 않는다.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다는 말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붉은 고추 뿐만 아니라 오이고추도 먹지 않는다. 붉은 오이가 있으면 좋겠다.

부삭

초가집 정개에는 큰 아궁이와 작은 아궁이가 있었다 마당에는 아주 작은 아궁이가 있었다 큰 아궁이는 가마솥을 걸어놓고 보리밥을 하였고 작은 아궁이는 된장국을 끓였다 마당의 아주작은 아궁이는 여름에 죽을 쑤었다 처마 밑에는 보리를 삶아 놓은 대나무 바구니가 걸려있었다 보리밥이 싫어 축구공으로 바구니를 맞추었다고 문산댁에게 빗땅으로 등짝을 맞았다 그래도 보리밥대신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여름에는 문산댁은 새벽에 논밭으로 나갔다가 대낮이 되면 더위를 피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며 다시 논밭으로 나갔다가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돌아왔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가볍게 저녁을 해결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손으로 띠어서 쓴 죽은 띤죽이라 하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병으로 밀어서 쓴 죽은 밀죽이라 한다 일년에 몇 번은 폿을 넣어 끓인 것은 폿죽이라 한다 광주사람들은 띤죽을 수제비라 하였고 밀죽을 칼국수라 하였다 겨울방학이 되면 동네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은 나무하러 산으로 올라갔다 남자들은 자장개비를 꺾었고 여자들은 갈꾸나무를 하였다 가스레인지는커녕 연탄조차 없는 시골의 아궁이는 자장개비나 갈꾸나무가 대신했다 광주로 고등학교를 유학가서 처음으로 자장개비와 갈꾸나무에서 해방되어 연탄불로 바꾸었다 하지만 연탄보다 번개탄을 더 많이 이용했다 산골정에도 언젠가 연탄 보일러가 들어왔고 언젠가는 기름 보일러로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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