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66] 마한사 인정 교과서 편찬의 필요성(上)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문제와 정율성 공원 조성과 관련한 논란의 본질은 역사를 당대의 눈으로 읽지 않고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데서 나온 혼란이다. 그리고 이 혼란을 빙자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역사가 왜곡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익히 아는 필자는 평소에 학생들 강의 또는 대외 특강에서 “역사를 당대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역사적 진실이 왜곡될 염려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역사를 공부하면 ‘진정한 자아’를 알게 된다. ‘나’를 안다는 것은 곧 정체성을 인식함을 말한다. 작금의 혼란스런 상황은 올바른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지역 여러 지자체가 앞다투어 ‘이순신 장군’ ‘백범’ ‘안중근’ 등 우리 역사의 불세출의 영웅을 기념하는 시설을 만들어 선양하려고 한다. 필자는 위대한 민족의 위인 선양사업도 중요하지만, 해당 지역 역사의 위인을 발굴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자기 지역에서 3·1운동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앞서 든 위인들의 기념관을 짓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필자는 묻고 싶다.
 
역사교육이 왜 중요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인문학이 계층과 시대를 넘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인문학적 사고가 형성되어야 ‘직관’할 수 있고, 핵심을 찾아 ‘설명’할 수 있는 ‘용기’가 길러진다. 이러한 인문학적 사고의 토대는 학교 역사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역사교육의 중요함을 말해준다. 특히 역사교육은 인문학적 사고력 형성뿐 아니라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학교에서 역사수업은 주로 교과서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는 학생들의 역사적·정치적 의식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역사교육의 현실이 자세히 분석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역사 인식 형성에 교과서의 중요함을 말한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최근 ‘글로컬’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글로컬’은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다. 가장 토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의미다. 고유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외래문화와 융합을 통해 창조적인 문화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사에 관심이 최근 커지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아를 강조하는 것과 맥락이 통한다. 

마한사는 지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고대사의 원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들어 마한의 중심지의 하나인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봄, 문화재청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후보지를 선정하려 할 때 충청도, 전북, 전남 등 전국이 마한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치 신청을 하였다. 중국 기록에 보이는 “마한에서 진한·변한이 나왔고, 백제가 마한 땅에서 형성되었다”라는 내용에 있는 것처럼 해당 지역에 속한 충청, 전남, 전북지역 10여 곳 지자체들이 신청하였다. 변한이 가야를 거쳐 신라로, 진한이 신라로, 마한이 백제로, 그리고 신라로 통일이후 고려를 거쳐 오늘날의 역사로 이어졌다면, 마한은 북쪽의 고조선·부여와 더불어 한반도 중남부의 역사 원류라 해도 틀림이 없다. 

이렇게 한반도 역사의 토대를 형성한 마한을 ‘마한·변한·진한’의 ‘삼한’의 하나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후대의 잘못된 인식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곧 마한에서 변한·진한이 나오고, 마한 땅에 유이민 집단인 백제가 둥지를 틀었다. 마한이 한국고대사의 원류인 셈이다. 마한은 ‘한(韓)’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호의 토대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밀려온 곳이 ‘한’이었다. 곧 마한 땅이었다. 이때가 기원전 2세기 무렵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때 마한이 성립돼 있었음을 말한다. 이렇게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역사를 대변한 마한을 삼한의 하나라고 하는 것은 마한이 지닌 역사성을 크게 훼손한 것이라 하겠다.

체계적인 마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

마한은 6세가 중엽, 백제와 통합할 때까지 거의 800년 넘는 역사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고유의 문화에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녹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였다. 마한문화가 민족문화의 토대를 형성한 셈이다. 그런데도 1950년대 말 이병도 박사가 일본서기의 기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내린 결론인 369년 근초고왕 때 마한을 멸망하였다는 주장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영산강 유역 마한이 5세기 들어서도 백제의 지배와는 무관하게 독자적 정치체를 형성하였음을 입증하는 유물, 또는 기록이 있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의 마한사 서술은 예년보다 훨씬 축소되고, 공무원 시험이나 평가원에서 출제하는 각종 시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마한을 다룬 평가 문항은 현미경으로 겨우 찾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마한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마한사는 여전히 4세기 후반 백제에 멸망 당하였다는 60여 년 전의 주장이 통설로 되어 있고, 고구려·백제·신라, 그리고 가야 중심의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교과서에서도 그 서술 비중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한국사 교과서 편수지침에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에 가야까지만 포함되어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마한은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교과서의 서술 축소는 전 근대사의 비중을 줄이려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중학교 교과서 서술 또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천편일률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지역 교육과정이 신설되는 2022 교육과정과 중학교에서 시행 중인 자유학기 교육과정 운용은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좋은 기회이다. 지역의 정체성과 대한민국 역사의 근원이 되는 마한사를 정리한 교과서를 편찬하여 학생에게 학습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도 교육감이 승인하는 인정 교과서는 변화하는 교육과정에 부응하면서도 지역의 역사를 넘어 마한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육 수단이다. 

이에 전라남도는 5개년 연차사업으로 ‘마한’을 다룬 인정 교과서를 제작하여 학교 현장에 보급함으로써 체계적인 마한 역사교육을 하려고 한다.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의 역사 인식 형성에 매우 중요함을 이미 언급하였지만, 전라남도의 이러한 시도는 여느 시·도가 시도하지 못한 뜻깊고 의미있는 사업이다. 이 뜻깊은 사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학술포럼이 이달 15일(금) 나주 동신대 회의장에서 열린다. 전라남도 전남문화재단과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공동주관한 이번 학술포럼에서 필자가 ‘마한 인정 교과서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다. 그리고 역사교육 전공학자 및 교과서 집필자들이 주제발표와 뜨거운 토론을 할 예정이다. ‘마한의 심장, 영암’의 자존감을 한껏 내세우고 있는 영암인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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