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중 수   전남도 명예감사관
조 중 수   전남도 명예감사관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정표로 그려준 조선후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국보 제180호이다. 지우들은 역적으로 몰린 추사와 멀리했고, 사랑하는 부인도 세상을 떠났다. 위리안치 추사에게 청나라 귀한 서적을 구해다 주고 추사의 소식을 한양과 청나라 지인들에게 전해주는 제자 이상적은 추사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 고마움을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우선시상이라 쓰고서 주었다.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청나라에 가서 청나라문인 16명, 조선문인 3명에게서 제찬을 받았다. 청나라 학자 조무견의 제찬을 소개한다.

세한도는 추사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상적-제자 김병선-아들 김준학-민영휘-아들 민규식-후지쓰카 지카시–손재형-이근태-손세기-아들 손창근(국립중앙박물관 기증)

왜정때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경성제대 후지츠카 지카시 교수가 애장하고 있었는데 해방 후 진도출생으로 국전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일본으로 찾아가서 오랜 기간 그를 설득해서 증여받았으며,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는 200만엔과 추사미공개자료 2,700점 포함 총 14,000여점을 기증하였다. 세한도를 감상하면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간결한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거칠고 메마른 붓칠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 유배지에서의 힘들고 지친 작가의 내면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추사는 유배가기 전이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변함없는 이상적이 송백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마운 마음에 그림을 그리고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이라고 썼다. 우선은 이상적의호였다. 그리고 여러해에 걸쳐서 청나라에서 귀한 책들을 어렵게 구해서 권력자에게 주지 않고 제주 유배지까지 찾아와 자신에게 준 것을 서문에 적고 있다.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그것이 다하면 흩어진다 하였다.

공자 왈 세한 연후에야 송백의 후조를 알게 된다고 하였다. 추사는 우선의 세한 이전이나 세한 이후이나 그 마음과 정성이 변함없음을 공자의 말씀을 빌려 칭찬하였다. 이상적이 세한도를 선물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스승님! 저라고 권세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스승님을 향한 제 마음을 스스로 그칠 수 없어 그런 것 뿐입니다. 이 그림을 갖고 연경에 가서 청나라 학자들에게서 제영을 부탁할까 합니다. 그리고 이상적은 연경에 가서 제찬을 받았다. 장무상망이란 인장은 세한도 우측 귀퉁에 찍어있는데 출토된 한나라 동경이나 기와에서 발견되는 글귀로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말로 사제지간의 존경심과 그리움을 나타내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신동이었다. 어느 날, 채제공이 추사의 집 앞을 지나다가 대문에 써붙인 입춘첩을 보았다. 채제공은 그 글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고, 문을 두드려 물었다. 마침 추사의 아버지 병조판서 김노경이 집에 있다가 남인의 영수 채제공을 보고서 깜짝  놀라 뛰쳐 나와서 어린 아들의 글씨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채제공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필시 명필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나,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못잡게 하였다 한다. 추사는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그러기에 청나라 유학자들도 추사를 해동제일통유라 칭송하였다. 

추사체를 만든 서예가요. 심의를 중시하는 문인화의 대가요. 특히 난을 잘 쳐서 흥선대원군도 추사의 영향을 받았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한 금석학자요, 실학자이면서 의외로 불교학자이다. 집안에 원찰을 두었고 말년에는 봉은사에서 기거하였다. 백파와 초의같은 당대의 고승들과 친분이 깊었고 초의선사는 제주 유배지까지 차를 직접 전달하였다. 해남 대둔사(대흥사) 일지암에 가면 초의선사를 만날 수 있고, 추사의 무량수각 현판도 볼 수 있다. 소치 허련은 진도 태생으로 호남 화단의 종조이다. 초의선사는 소치를 추사에게 소개하고 추사는 소치의 자질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서화를 지도하였다. 진도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임전 등 전통 남화를 이어준 본거지이다.

추사와 우선 같은 사제지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요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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