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65] 검정 교과서의 마한사 서술 확대에 대한 방략(下)

시종 옥야리 고분군. 마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 2022년 11월 3일 시종면 옥야리 고분군을 답사한 초당대 국제학부 베트남 학생들이 옥야리 고분군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자 조간신문에 2024년도 전라남도 국비 예산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설계비 5억 원이 편성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구체적으로 설계비 5억 원이 어느 규모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센터 건립이 후보지 선정과 함께 곧 착공에 들어간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고자 한다. 

지난 8월 첫 주 토·일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영암의 역사 자원을 차분히 살펴보려고 기찬재에서 묵었다. 영암을 알고자 하는 전남대 역사교육과 조영광 교수도 필자와 동행하였다. 토요일 기찬랜드 야외 수영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밀려든 차량과 많은 인파에도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고, 이튿날 새벽 둘러본 야외 수영장 주변은 쓰레기 하나 없었다. 영암군 공무원, 봉사단원의 헌신이 돋보였다. 풀장에서 하루를 보낸 피서객들에게 고대 마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역사를 함유한 영암을 알게 하는 것은 과제이다. 영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특정 시기를 넘어 1년 동안 지속되었으면 한다.
 
천편일률적인 마한사 서술

지난 호에 4·19혁명의 계기가 된 대구의 2·28 학생시위가 교과서에 등재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2·28 관련 내용에 대한 검인정 교과서의 서술 내용이 출판사마다 다양함을 살폈다. 하지만 마한사 서술은 천편일률적이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마한사 서술을 조영광 교수가 정리한 2009년과 2015년 교육과정 비교표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교과서가 고조선 유민의 남하로 삼한이 형성되었고, 마한 목지국 수장이 진왕으로 전체 삼한을 통솔하였다는 설명에다 마한의 생활 모습, 제정 분리라는 마한 사회 성격을 설명하는 내용이 중학교, 고등학교가 대동소이하다. 곧 학교급 간 계열화나 위계화가 드러나지 않았고, 최근 대규모로 이루어진 발굴 성과로 확인된 영산강 유역의 마한 사회에 대한 설명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조영광 교수는 영암·나주 등 전남 일원에 산재한 마한 대형고분 및 출토 유물의 성격을 통해 볼 때 백제가 4세기 후반에 마한을 지배하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심지어 백제 개로왕(455-475), 동성왕(479-501) 대에 시행된 왕후제(王侯制) 또한 전북지역이나 전남 일부에 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남지역이 백제의 군현 지배체제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조영광 교수는 백제가 전남의 대부분 지역을 직접 지배 양태로 통치한 시기는 지방제를 5방제로 정비한 성왕대로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하여 필자의 주장에 상당 부분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조영광 교수는 경주와 비교적 가까운 대구지역 달성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식 묘제와 신라계 금동관, 이식(耳飾, 귀걸이), 환두대도 등을 통해 대구지역 세력이 비교적 이른 시기 신라에 복속되었음을 의미하지만, 마한 고분은 묘제와 유물을 통해 백제와 차별성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주변국과 신라의 관계를 분석하며 마한의 독자적 연맹체 설정을 시도한 조영광 교수는 앞으로 개정될 교육과정에서는 기존 ‘삼국지’ 한조의 내용을 전재(轉載)하는 것에 그친 서술 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학교 교육과정은 현행 교과서 내용에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 사실을 추가해야 하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마한이 고대사, 더 나아가 전체 한국사와 한국인에게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조영광 교수는 이러한 교과서 서술을 위해서는 마한 관련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중·고교 학교급 간 계열성을 확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제의 지방제도 변천사를 분석하여 마한지역 통치 방식과 시기를 단계별로 구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진한 지역과 같은 다른 지역 사례와 비교 분석하여 마한사의 성격과 특징을 부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빈약한 학교 현장의 평가도 문제

한편 이번 발표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현숙 박사의 고견은 마한사의 교과서 서술 확대 및 마한 인정 교과서 편찬, 영암 마한을 중심으로 한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꾀하는 필자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동북아 역사재단의 선임연구원으로 고구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 박사는 중국의 역사 왜곡인 동북공정 비판의 최선봉에 선 강단이 있는 학자이다. 마한이 비교적 생소한 그에게 마한의 역사는 신비롭기도 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성도 순간 떠 오른 듯하였다. 

필자가 나주 반남·영암 시종 일대의 정치세력으로 ‘내비리국’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동감을 한 김 박사는 정치적 실체로서 마한의 실체가 잘 보이지 않은 까닭은 3세기까지 강한 결속력을 가진 마한연맹체가 4세기 이후 연맹체가 성장, 발전하면서 별개의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서로의 필요에 따라 주변국과 교류하고 협력하였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때의 마한연맹체는 ‘마한’이라는 명칭보다는 독자적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을 대외적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김 박사는 어떤 지역에 존재하는 소국이나 연맹왕국이 더 큰 세력에 들어갈 경우 복속되기도 하지만, 지역 세력의 주체적인 결단에 따라 병합을 택한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이러할 경우, 역사는 강자의 존재나 그들의 논리만 남게 되므로, 이전의 인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지역사의 경우, 시점과 용어, 서술 방향 모두를 지역 자체에 두고 역사 변화를 추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필자는 김 박사의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다른 토론자인 유신고등학교 최효성 선생은 마한사 교과서 서술 확대를 위해서는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시험에서 마한 관련 문항이 출제된다면 마한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근 10년 동안 전국단위 평가에서 마한 관련 문항 출제 문항을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한국사능력시험 고급 20회의 ‘마한의 토실’ 문항이 유일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교과서의 마한 관련 서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지만, 마한사에 대한 이해가 출제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여하튼, 이번 검정 교과서의 마한 서술 확대 세미나는 교과서 집필자들이 영암 마한을 중심으로 마한사의 연구 성과 및 문제점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미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마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0년이 되어서야 이러한 시도가 처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미 절반 이상 달려가고 있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준 우승희 군수와 영암군, 강찬원 의장과 영암군의회, 그리고 항상 뜨거운 격려를 아끼지 않은 영암군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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