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머리 나쁜 사람이 바둑을 잘 둘 수 없고, 머리 좋은 사람이 바둑을 잘 못 둘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바둑 랭킹은 신진서, 박정환, 최정, 김채영(남·여, 1, 2위)이다. 바둑은 인간이 만든 놀이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날 며칠 바둑판 앞에 앉았다가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세계 바둑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고정관념은 틀릴 수 있다.’ 이제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탈출해 기존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것이 알파고가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이었다. 

그럼, 바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역사부터 더듬어 보자. 중국의 태평성대를 이뤘던 요, 순임금이 그의 아들 단주와 상균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농경시대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도구로 바둑을 발명했다는 설이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도림’ 승려와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두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백제문화와 함께 일본에 건너갔고, 해방 후에 일본에 바둑 유학을 다녀온 조남철 9단이 한국기원을 발족시켜 부응했다고 한다.     

바둑이란? 바둑판 앞에 흑·백돌을 가진 두 사람이 한 번씩 번갈아 돌을 놓은 뒤에 더 넓은 집을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집은 모두 361집(19×19)이며 1년에 비유한다. 네 귀는 4계절이며, 적은 돌로 집 짓기에 가장 좋기 때문에 바둑의 명당자리로 옥토(沃土)에 해당한다. 네 변은 바다이고, 가운데 한 점은 천원(天元)이다. 집과 집 사이가 떨어진 두 집 이상을 만들어야 산 돌이 되고, 그러지 못하면 죽은 돌이다. 서로 집을 지으려다 보면 필연적으로 경계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일어난다. 바둑 규칙에는 착수금지점(着手禁止点), 일수불퇴(一手不退) 등이 있다. 한편, 바둑의 별칭은 수담(手談), 현현(玄玄), 신선놀음이 있는 매너 게임으로 어른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놀이이기 때문에 예의범절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수 조훈현(1989년 세계바둑 제패) 9단을 배출한 영암군은 이를 기념해 바둑박물관을 세웠다. 그는 4살 때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해 서울로 이사를 간 후, 바둑을 공부하여 9세(1962년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승단한 우리 고장을 빛낸 인물이기도 하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에 동네 형들이 재미있게 바둑 두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어깨너머로 조금 배우게 된 것이 기회가 되었다. 그 후로 햇병아리 교사시절 고향 마을의 K 교장 선생님께 밤마다 5년 동안 바둑을 익혔다. 광주광역시 큰 학교에 근무할 때, 평소에는 엄한 교장 선생님과 대화하기도 껄끄러웠는데 방학 동안이면 자주 바둑 대국을 하는 사이가 되어 사랑을 독차지했던 아름다운 추억도 있다. 그 후, 학교를 퇴임하고 7년간, 초·중학교에서 방과후에 바둑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교육의 보람을 느낀 일이 있었다. 

요즈음 학교폭력으로 교육현장이 들끓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이 최고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남의 자식이야 무슨 상관있느냐?’라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있다면 오히려 그 자식이 비틀어져 바른 인성을 가진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의 중요함과 이웃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탓이다. 우선 급하게 앞에 있는 나무만을 바라보지 말고 멀리 숲을 바라보는 참된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지 싶다. 바둑은 우선 다급히 성적을 끌어올려 좋은 학교에 입학해 좋은 직장인이 되기에는 거리가 멀지 모르나 바른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을 기르기에는 아주 좋은 학습방법이 아닐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독서나 건전 놀이보다는 휴대전화 게임에 푹 빠져 있으니, 이런 천방지축(天方地軸)인 아이들에게 바둑교육은 두뇌발달에도 크게 도움을 주고 끈기와 인내심을 길러 주지 않을까? 침착성, 창의력, 수리력, 지구력을 길러 주는 인성교육의 장으로서 안성맞춤이 아닐까? 바둑에 대한 관심이라도 갖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 판의 대국에서도 ‘신의 한 수’를 두어 승리할 수도 있지만 패배를 맛볼 수도 있다. 승리할 때는 자만하지 말고, 패배했을 때는 깨끗이 승복하는 마음의 자세를 기를 수 있는 좋은 수련 방법이 아닐지? 필자도 바둑을 두면서 생긴 인내심과 끈기로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파고들고 노력하는 공부습관이 몸에 배었다. 30년이 넘게 붓을 잡을 수 있는 끈기와 인내심. 밤을 새우면서 낚시를 즐기는 것도 바둑을 두면서 생긴 노하우인 것 같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우리 집에 오면 나와 바둑을 두자고 조른다. 무엇으로 이 어린 것과 60년 세월의 간극(間隙)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면서 교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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