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용 배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초등학교장
 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

영암여고를 지나 조금 가면 영암천이 흐르는 곳에 다리 하나 있다. 중학교 때부터 시오리 학교 길을 연결해주었던 다리다. 길도 멀었지만 어린 학생에게 책가방의 무게는 고통이었다. 당시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전거 하나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감생심 어렵사리 보내주신 학교만으로도 감사한 할머니에게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할머니친정의 조카라 하셨다. 바퀴가 번쩍거리고 벨 소리가 경쾌한 환상의 자전거다. 며칠간 쉬었다 가신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할머니! 내일 학교 갈 때 자전거 좀 타고 가면 안 돼?” 어찌나 졸라댔던지 결국 듣고 있던 삼촌분이 허락해 주었다. 다음 날 걸어가는 여러 친구의 가방을 짐칸에 묶고 핸들에 걸고서 친구들과 함께 달렸다. 학교 정문 아래 자전거 점포 중 어느 한 곳에 먼저 온 자전거 몇 대가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세워 두고 학교로 올라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금도 난 미신이라는 걸 안 믿는 편인데, 학교생활 내내 불안하고 왠지 불길한 예감으로 하루가 여삼추였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종례가 끝나자마자 바람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러 많기도 한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와 아침에 둔 자전거 점포에 당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자전거는 없었다. “아저씨! 내 자전거 어딨어요?”“뭐! 무슨 자전거?”“오늘 아침에 여기에 두었는데요.” “이 애가 무슨 소리냐. 네가 무슨 자전거가 있어?”“아저씨 그게 아니라요.” 눈물 반 콧물 반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전거를 이곳에 둔 하소연에도 주인은 듣는 둥 마는 둥 본 적도 없다는 말 한마디에,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어떻게 해서 타고 온 자전건데….’ ‘못 찾으면 사 줘야 할 텐데 그 돈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몇 번이고 얘기했건만 주인은 생떼를 쓴다면서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로 갔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은 퇴근 전이셨고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나와 친구들을 함께 데리고 점포로 가셨다. 아침에 내 자전거에 가방을 싣고 온 친구들이 갈 적에도 실어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던 애들이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분명히 이 점포 앞에 두었다고 자리까지 가리키면서 증언을 했다. 선생님께서도 사정하셨지만, “아니 선생님이 나를 도둑놈으로 보십니까?” 허리를 곧추세우고 불같이 화를 내는 험악한 얼굴에 더 이상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저녁이 오고 어둠이 깊어지니 자꾸만 고생하신 할머니 얼굴만 떠올랐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자전거값이 만만치 않을 텐데…. 오직 이 생각뿐으로 울다가 걷다가 추더라 다리를 막 지나려던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도 저만큼에서 평소 다리 한쪽이 성치 않으셔서 약간 절룩거린 그러나 매우 빠른 걸음으로 할머니가 팔을 휘저으며 오시는 게 보였다. 다리 밑 언덕배기로 숨었다. 차마! 그래 차마 할머니를 볼 수가 없었다. 친구들로부터 자전거 소식을 들으셨을 것이다. ‘어디로 가실까?’ 할머니는 그 점포도 모르실 테고 또 가 보신들 찾을 수가 없다는 절망감에 함께 갈 용기가 없었다. 얼마나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시다 허탈한 마음의 상처만 안고 되돌아오실 할머니를 기다리며 다리 난간에 앉아있는지 아마 두어 시간은 족히 넘었음 직할 때였다. 그날따라 달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읍내 쪽에서 저벅저벅 걸어오시는 할머니의 발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만의 냄새가 발소리보다 앞서서 먼저 내게로 퍼져왔다. 왈칵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살펴보니 아니 이럴 수가! 할머니가 머리에 뭔가를 이고 오시는 게 아닌가. 그래! 자전거였다. 그토록 찾고 헤매던 그 자전거를 할머니가 지금 이고 오시는 거다. “할머니!”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깜짝 놀라신 할머니는, “아이고 내 새끼! 얼마나 애 탔을꼬?” “할머니! 자전거 어디서 찾았어?” 나는 이 사실이 더 궁금했다. “응. 그건 조금 있다고 얘기하고 어서 집에 가자. 그런데 더 이상한 게 자전거를 온통 새끼줄로 칭칭 감아서 이고 오셨다. “할머니! 왜 새끼줄로 묶었어?” “응, 내가 그랬다. 밤길에 이고 오다 바꾸 한 개라도 빠져불면 어쩌냐?” 당신 잘못으로 행여 바퀴 하나라도 도망갈까 봐 새끼줄을 얻어 저리도 사정없이 이리저리 묶으셨다며 내가 잘했지, 하시는 표정이셨다. 위대하신 할머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집으로 와서야 자전거를 찾게 된 기막힌 사연을 들었다. 학교 앞 자전거 점포를 몇 군데 가셨지만 이미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았단다. 지식은 배워서 알겠지만, 지혜는 살아온 경륜에서 나온다는 말이 할머니를 두고 한 말인 듯싶다. 곧바로 경찰서로 가셨단다. 

경찰서? 그렇다. 할머니에게 있어서의 경찰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한이 맺힌 곳이 아니던가.  6·25 직전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평소 애지중지 타고 다니던 말(馬)을 경찰들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이를 찾으러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생사를 알 길이 없는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그런 아들을 찾으러 몇 번이나 찾아가 피눈물로 하소연했을 바로 그 경찰서를 당신의 그 발로 찾아가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셨으니, 참으로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정이셨을 것이다. 더 말해 무엇하랴. 오직 또 하나뿐인 손자 사랑의 용기와 힘이셨을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할머니는 경찰서에 들어가시자마자 아무나 붙잡고 내 손자 자전거를 찾아달라고 통사정을 하셨단다. “어느 높은 양반이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녔지. 주인들이랑 안으로 들어가 뭐라고 뭐라고 오랫동안 얘기했어.” 다행히 내가 자전거를 둔 집의 주인과도 얘기했을 것이다. 한참 후에 그 자전거 점포의 집 뒤에 있는 창고 안에서 경찰분이 내 자전거를 가져와서는 이것이 맞느냐고 할머니께 물으셨는데, 자세히 알지를 못해서 그저 새것이고 아주 비싼 것이라고만 했더니 맞는 것 같으니 가지고 가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손자 녀석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당신의 힘으로 찾아, 머리에 이고 어둠 속을 헤쳐 오시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해 눈시울이 아려온다. 

추억과 애환이 얽힌 추더리 다리! 나이 드니 가슴에 밟히는 건 어찌 이뿐이랴. 고향을 그리는 노스텔지어는 떠나온 사람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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