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  전 목포시 교육장
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장마로 아시내가 사방이 우중충하다. 우태가 자욱해 금방이라도 또 비가 올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질척거려 딱히 할 일이 없다. 풀을 뽑기도 예초를 하기도 마땅찮아 대비를 들고 뒷동산으로 향한다. 무궁화가 군데군데 피기 시작하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동산 길 마지막까지 올라 내려가면서 비질을 시작한다. 시멘트 포장길에 물기가 있어 잘 쓸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천천히 비질을 한다. 비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무료해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길은 동네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길이 아니다. 인적도 드물고 잘 보이지도 않아 관리할 필요성이 적은 길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시내 다른 길 보다 더 자주 비질을 한다. 

내가 왜 뒷동산으로 오르는 길을 자주 비질을 하는지 그 까닭을 나 자신도 잘 모른다. 뒷동산 길에서 보면 지난날 소작인들의 눈물이 고인 학파농장이 내려다보인다. 물안개 자욱한 학파농장은 2백만 평이 넘는다. 또 그 농장에 물을 대기 위해 마련된 학파 저수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저수지라고는 하나 내 눈에는 커다란 호수처럼 드넓다. 그리고 그 호수 너머 쇠악바위 아래 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외가 마을이 보인다. 마을 한가운데 외가가 있고 내 유년 시절의 무대가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린다. 막내 이모가 심어놓은 핏빛보다도 더 붉은 난쟁이 칸나와 마주앉아 저수지 건너 엄마를 그리던 유년 시절의 시린 기억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비만 오면 피눈물을 흘리던 쇠악바위를 바라보며 외할머니 모르게 눈물을 떨구던 유년 시절이 비질을 하면 아른거린다. 눈을 더 멀리하면 아늑한 은적산이 동서로 길게 펼쳐있다. 내 초등학교시절 숨을 은(隱)자를 쓰는 하은적산 골짜기 구적골로 소풍을 갔고 은적산이 꽁꽁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 선생님에게 선물을 받기도 했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어머니는 우리 집 개 방울이와 함께 이 길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화병이 쌓이면 우울증이 된다고들 하는데 어머니는 말년에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언제나 내가 고팠던 어머니는 결국 어느 날 갑자기 개 방울이만 있는 아시내 집에서 하늘로 가시고 말았다. 이 길에 서서 비질을 하면 외롭게 내 곁을 떠나가신 어머니가 눈에 밟힌다.  

이 길은 좁고 살짝 돌아가는 굽이가 있어 쓸어놓고 보면 아름답다. 특히 오래전부터 누군가 심어놓은 무궁화가 피고 늙은 소나무에 매달린 향단이 그네가 졸고 있을 때 비질된 길과 묘하게 어울려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오가는 이가 없기에 고요함까지 간작해 운치가 그만이다. 가끔씩 동산 건너에 아들이 사는 이웃마을 박옥련 여사와 동산 끄트머리에 고추밭이 있는 아시내 이장댁, 그리고 동산 중앙에 콩밭이 있는 이웃마을 옹진댁이 가끔씩 오르내린다. 

옹진댁은 스쿠터를 타고 오르내리다 비질을 하는 나와 자주 마주치곤 했다. 옹진댁과 마주칠 때마다 느끼는 건 무엇에 쫓기듯 항시 바쁘다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옹진댁은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근동의 다른 여인에 비해 결코 돌아가실 정도의 연배는 아닌데도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옹진댁이 고인이 된지 얼마 안 되어 자녀들은 옹진댁이 자존심으로 여기며 보듬고 있었던 갯논 세 단지를 팔아가 버렸다. 그 갯논은 옹진댁이 소작을 하며 어렵게 학파농장으로부터 불하받아 자작으로 만든 눈물과 혼이 담긴 땅이었다. 나는 마을 가꾸기 추진위원장이 되어 작년에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실향민으로 구성된 옹진댁 마을에 ‘그리움만 고였어라’라는 망향비를 세웠다. 그리고 그 비명을 이렇게 쓰기도 했다. ‘정들면 고향이라 했던가. 허나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흘린 눈물이 갯논을 적시니 그 세월이 70년이라. 여기 이 땅에 둥지를 틀고 비바람 견디며 소망을 품었던 당신들을 기리며 남겨진 우리들이 이 비를 세웁니다.’ 그런데 항상 바쁜 옹진댁도 눈물로 적신 갯논 세 단지도 실향민이 튼 둥지 새마을을 떠나 버렸다.  

뒷동산 길에서 비질을 하면서 나는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한다. 절대 빈곤의 시절 아시내를 에워싸던 소작인들의 눈물과 내 유년 시절의 기억,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상념에 젖는다. 뒷동산 길에 오르면 일찍 홀로되신 외할머니와 함께한 내 유년 시절이 보이고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가 보인다. 난 이 길을 오래도록 쓸어야 할 것만 같다. 장마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앞으로도 많은 비가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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