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용 배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초등학교장 
 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

교직생활 마무리를 파주의 북단 파평면에서 했다. 교장 중임까지 8년을 마치고도 기간이 남아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공모 교장에 선발되어 다시 4년을 장파리라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보냈다. 그곳은 임진강이 흐르는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민통선인데 강에서 잡는 메기와 잡어들로 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많고 그 명성은 자자하다. 

어느 날 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다소 허름한 건물이 제법 연륜이 있어 보이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닌듯했다. 식사가 끝나고 주문한 커피를 들고 아내분이 들어왔다. 그냥 인사치레로 음식도 맛있고 경치도 좋다고 했더니, 이번에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이시냐고 고향이 남쪽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자기들은 강진이라 했다. 그것도 영암과 가까운 성전면이라니 한참이나 반가운 고향 얘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들렀다. 갈 때마다 옆집 식당에 비해 확연하게 손님이 적어 안타까운 생각을 지을 수가 없던 차에 어느 날 그들이 관사로 찾아왔다. 젊은 부부의 애로가 많음을 듣고 솔직하게 식당에서 느꼈던 생각을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들도 조언을 듣고 싶어 왔단다. 여섯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탕 맛의 기본은 육수다. 걸쭉하고 텁텁하고 찐하게 푹 고아낼 것. 둘째, 승부는 양이다. 탕 그릇 안은 메기와 잡어들을 그득하게 담을 것. 셋째, 밥이 맛있어야 한다. 밥맛은 쌀이 좌우하니 최고급 쌀을 쓸 것. 넷째, 반찬은 신선이다. 유기농 채소와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며 당일 만들 것. 다섯째, 주차가 편해야 한다. 특히 비 오는 날 차 바퀴에 흙이 묻지 않도록 할 것. 여섯째, 감동을 심어라. 손님이 나갈 때 작은 용기에 매운탕을 담아 반찬 한 가지와 함께 예쁘게 포장해 드릴 것.

이후, 얼마 동안은 일부러 그 식당을 들르지 않았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학부모들이 그 식당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인데, 사연이 내가 전에 강조했던 그런 내용들이었다. 식당의 성화에 직원들과 함께 갔다. 식당 앞의 작은 샛길까지도 승용차들이 가득해 잘못 본 게 아닌가 했다. 그사이 어찌나 밀려드는 손님들로 두 사람이나 더 채용했단다. 함께 간 직원들도 어찌 된 일이냐고 의아해 했다. 입소문이었다. 서울 손님이 가장 많이 온단다. 퇴임하고 그곳을 떠나온 지 벌써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너무 멀어 가보질 못했는데, 그사이 전에 그토록 성황을 누리던 옆 식당 건물까지 사들여서 지금은 직원이 여덟 명이라며 전화할 때마다 훌쩍거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최근에 남해의 어느 작은 농촌 보건소에 방문객이 10배나 증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젊은 남자 한의사가 새로 부임하여 남다른 친화력과 정성을 다하는 치료가 이웃 면에까지 환자들의 입과 입을 통해 울려 퍼지는 소문 때문이라 했다. 군산의 한 빵집의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기 위해 매장 앞에 줄을 서는 것이나, 단양의 어느 시장에서 파는 마늘빵도 그러하다. 모두가 입소문이다. 자주 영암과 광주 그리고 나주를 들러 볼 일을 마친 후에는 함께한 사람들과 먹거리를 찾는다. 요새는 한 끼를 먹더라도 먹방에 나오는 곳을 찾는 게 일상화된듯하다. 담양의 대통밥, 곡성의 참게탕, 보성의 꼬막정식, 강진의 한정식, 장흥의 직판한우, 영산포의 홍어삼합들은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그 지역의 대표 음식들이다. 물론 맛이 기본이지만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격에 비해 양이 푸짐해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것이다. 

우리 영암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영암’ 하면 생각나는 대표 먹거리로 한우랑 낙지가 떠오르지만, 오늘은 장어 얘기를 할까 한다. 영암군을 함축하는 브랜드인 기(氣)와 직접 관련이 깊은 음식 중 한 가지이기도 하니 말이다. 장어는 산포나 구진포가 소문난 곳이지만 내가 영암을 살리는 한가지 길로 장어를 화두로 꺼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난 장어를 선호하여 자주 영암의 장어집을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맛있게 먹은 것 같은데 잘 먹었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음이 솔직한 표현이다. 맛이야 어느 장어집이나 있다지만 문제는 양이다. 세 사람에게 1㎏가 정량이라면 한 사람 앞에는 작은 장어 한 마리로 아직 제맛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장어는 바닥이 난다. 술 몇 잔에 밥 먹고 나면 거의 십여만 원에 가까운 지출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면 항상 뭔가 아쉽다. 맛있게 먹긴 했지만 잘 먹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느 장어집이나 다 비슷하니 그 이상은 더 알지 못한다. 장사하는 처지에서는 무얼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냐 하겠지만 그냥 단순한 생각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비단 식당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기에 장어를 일례로 들었지만,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작물 하나 채소 한 포기를 파는 농민들까지도 남이 하는대로 전부터 해오던 대로만 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 영암 관내의 모든 공무원의 생각이나 자세도 마찬가지다. 정책이나 구호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앞서 파주의 메기 매운탕 집처럼 변신하고 혁신해야 한다. 먼저, 영암의 장어집은 박리다매하자. 영암에 가면 저렴한 가격으로 배가 부르도록 먹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게 하자. 그뿐인가. 밥 한 공기는 기본이고 사전에 손수 담가둔 도라지 술이라도 한 병 올려주고, 사이다도 한 병쯤은 기꺼이 내어놓자. 여기에 장어 머리나 내장으로 끓인 국 냄비 하나 더 첨가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남 따라 하는 흉내로는 결코 오래 가지도 이겨낼 수도 없다. 지금은 광주나 영암과 이웃하는 지역이 모두 한 시간 내 거리이니 소문 한번 나면 어디서든지 몰려들 것이다. 물론, 소문이 나려면 상상 그 이상의 새로운 발상으로 뼈를 깎는 노력과 정성이 있어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바람처럼 빠르게 물결처럼 번져나간다. 입소문 말이다. 내 고향 영암의 부흥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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