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병 연​​​​​​​
ㆍ사회복지학박사
ㆍ조선대 초빙교수
ㆍ한국청소년인권센         터 이사장

어머니 역할이 중요했던 모계사회

마콘데 조각의 발상지는 탄자니아의 마콘데 고원(Makonde Plateau)으로서 지금은 흑단이나 짙은 색상의 나무로 만든 조각품 등을 일컫는 말로 보편화 됐다. 오늘날의 마콘데 조각은 거의가 동아프리카의 흑단나무를 사용하고 있으며, 마콘데 조각은 흑단나무의 가지나 뿌리의 자연형태를 그대로 살려서 여기에 간단한 작업도구(끌, 줄, 톱, 흑단)를 이용하여 사람과 동물, 식물 등을 대상으로 하여 아름다운 부족과 가족에게 전승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제작하고 있다. 마콘데 조각가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조각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마콘데 조각가들은 여러 종류의 마스크, 조각상들 그리고 장식품을 제작한다. 가장 유명하고 널리 제작되는 마콘데의 마스크는 소년이 성인식을 할 때 사용하는 머리 탈이다. 서 있는 남자나 여자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조상을 나타내며 마귀를 쫓는 기능을 한다. 현대의 마콘데 미술가들은 길게 늘어져 있거나 혹은 뒤틀어진 모습 등 기형적이고 다소 초현실적인 사람 모양의 흑단 조각상을 주로 제작하는데 이러한 작품의 소재는 부족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원을 가진다. 추정컨대, 이는 마콘데 부족의 신화, 사랑, 생활, 인간의 기원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선과 악, 작가의 영감 등을 토대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마콘데 조각의 주제는 주로 가족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의 형상을 많이 조각하고 있다.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마콘데족은 모계사회였고 그래서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것이 작품 세계에서도 투영되어 어머니의 상이 조각에서 많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마콘데 부족의 탄생 신화

시초에 야생의 장소에서 외로이 홀로 살던 존재(아직 남성이 아니라)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나무 하나를 가져왔고, 도구를 가지고 조각을 만들었다. 그는 그 조각을 집 옆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그 조각은 여인이 되었고, 그 여인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임신을 하게 되었고,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3일 후 아이는 죽고 말았다. “이 강가에서 갈대들이 자라는 더 높은 장소로 집을 옮기자”고 그의 아내는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고, 다시 그녀는 임신했으며,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이 아이 또한 3일 후 죽고 말았다. “울창한 관목이 자라는 좀 더 높은 곳으로 옮겨 가자”며 그의 아내가 말했다. 한 번 더 그들은 이사를 해서 이르른 곳이 바로 마콘데 고원이다. 또다시 임신을 한 아내가 세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죽지 않았고, 그가 바로 최초의 마콘데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신화는 마콘데 예술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으며, 여인은 신화뿐만 아니라 종교 그리고 예술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모잠비크 양국 국경에 펼쳐진 5천㎢의 광대한 산악, 고원지대에 사는 마콘데족은 반투족의 일원으로, 5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마콘데의 이름은 이 고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해발 500~800m의 높이의 이 고원은 루브마 강에서 2개로 나누어지고, 북쪽이 탄자니아, 남쪽이 모잠비크에 속한다. 바깥 세계와는 떨어진 고원에서 이루어진 고대의 마콘데 문화는 멋진 조각 예술의 꽃을 피웠는데 이는 부족의 탄생 신화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에는 다른 인근 부족들이 따라가기 힘들만큼 흑단을 다루는 독자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필자가 △아프리카 조각이 현대미술에 미치는 영향 △목재의 다이아몬드 흑단 이야기 △탄자니아 마콘데 부족의 흑단조각 등 3회에 걸쳐 집필하게 된 것은 30여 년 전 3년 동안 세 컨테이너에 흑단 작품을 30㎝에서 3m가 넘는 대형 작품까지 300여 점 이상을 소장하면서 흑단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세계의 보호수인 흑단으로 만든 마콘데 부족의 작품의 진수라 할 수 있는 탄자니아 마콘데 부족의 작품을 대량으로 소장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큰 축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현지에서조차 보기 힘든 오리지날 작품으로 안내하고자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한 자리에 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것은 유일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우리 영암에서 지키고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과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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