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이하 센터) 후보지가 영암으로 결정되자 필자에게 축하 전화가 많이 왔다. ‘영암’ ‘나주’ ‘해남’ 등의 특정 지역을 넘어 영산강 유역 마한이 한국 고대사의 원류임을 밝히려 노력한 필자는 영산 지중해의 중심에 있는 나주·영암 어느 곳에 센터가 들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번 센터 후보지 선정은 영암이 되어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오롯이 간직한 마한의 정체성

나주는 국립나주박물관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등 국립 연구기관이나 관람시설이 2개소나 있지만, 나주에 버금가는 영암은 우리나라 최대의 마한 유산이 집중된 데다 동아시아 해양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마한의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 일찍이 ‘마한의 심장’이라고 필자가 명명한 마한 문화의 특질을 대변하고 있지만, 마한 관련 시설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영암에 센터가 들어선 것은 지역균형과 역사균형 발전 차원에서 당위성이 있다.

다음으로, 영암 마한이 지닌 뛰어난 가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영암 마한의 강점은 마한 유산이 집중되어 있고, 그 유산은 동아시아 해상 문명의 허브 기능을 오롯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세계 유산의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할 정도로 문명의 특질이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본란을 통해 몇 차례 다루었지만, 영암 고분출토 유물이나 고분 구조들은 마한 문명의 다양한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국가사적 후보에 올라 있는 마한 왕국의 실체를 입증한 쌍무덤, 교류·융합의 마한 문명 특질을 보여준 옥야리 방대형 무덤, 특히 방대형 무덤의 석실 양식은 영산강 유역 석실 무덤의 등장을 알려주는 것이고, 전용 옹관의 시초인 선황리 옹관 등 영암 마한 유산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국보로 지정된 독천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거푸집 일괄 유물은 영암이 독자적 청동기 문명을 꽃피운 곳임을 설명하고 있다. 센터 후보지인 삼호 나불도 출토 패총 유적은 이곳이 문명교류 허브임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월출산 해양 제사유적과 남해신사를 통해 알 수 있는 해양문명적 요소와 결합된 영암 마한의 특질은 가야, 백제, 신라 등 다른 고대 문화권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유산 등재요소인 OUV에 해당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 마한을 상징하는 센터가 들어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마한의 심장에 해당하는 시종 주민을 비롯한 영암인들은 어느 지역보다 마한의 후예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센터 선정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법하다. 영암인들은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한 문명이 그들 문화의 토대임을 익히 알고 있다. 영암인들의 내면에 흐르는 마한 유전자는 1992년 마한역사문화연구회 결성으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되었다. 2004년 전국 최초로 조성된 마한문화공원, 2015년 전국 최초로 개최된 마한축제 등은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영암 마한의 강점이었다. 최근 들어 영암군은 지자체 최초로, 학술세미나와 답사프로그램 등을 해마다 지원함으로써 영암 마한을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 마한의 정체성을 밝히고, 이를 지역주민과 함께 공유하려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영암 마한을 중심으로 한 마한 유산을 세계 유산에 등재하려는 원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마한 문화를 복원하려 한 시도는 여느 지자체에서 시도하지 못한 것으로, 영암 마한이 내세우는 또 다른 자랑이었다.

2022년 전라남도 마한 행사 때, 마한문화공원에서 시종의 70대 부녀회원들과 어린 초등학교 및 중학교 학생들이 크레파스로 마한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때의 동영상을 보면서 그 감흥을 잊지 못하고 있다. 영암 마한을 알기 위해 이웃 나주를 비롯하여 광주 남구문화원에서 회원들이 답사단에 합류한다. 이번 센터 유치 기간에 지역마다 플래카드를 걸었지만, 영암은 훨씬 이른 지난 설 연휴 때 주민들 스스로 걸었다. 이렇듯 30년 전부터 준비한 영암 군민들의 간절함이 이번 센터 유치의 결정적 계기였다.
 
나불도의 역사성과 상징성
지난 5월 9일 나주 공공도서관에서 개최된 마한 특강을 다녀왔다. 나주에는 ‘마한역사문화포럼’이라는 자생적 시민단체가 있다. 그 단체의 자문교수 역할을 필자가 하고 있는데 회원들이 공공도서관의 도움으로 해마다 마한 특강을 한다. 필자는 해마다 특강을 하여 나주 회원들은 필자가 주장하는 마한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떤 회원은 필자 강의를 녹취하여 회원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이들에게 마한 센터 선정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며 특정 지역이 아닌 영산강을 중심으로 마한 문명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것이라고 하며 이해를 구하였다. 모두들 흔쾌하게 공감을 한다. 고마울 따름이다. “왜 나불도를 후보지로 내 세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하고자 한다.

나불도는 생소한 지명으로 영암 주민들도 느낌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영암의 센터 후보지로 누구나 시종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지 기준에는 역사성을 포함한 접근성, 정주 여건 등 여러 요소가 있었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으로 영암군은 나불도를 1순위로 고려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불도가 지니는 역사성, 타당성, 역사성, 상징성 등을 살피다 보니 나불도에서 시종에 이르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어 ‘해상강국 마한’의 슬로건이 명료해졌다. 영암군의 후보지 선정이 탁월했다는 반증이다.

나불도는 1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패총 유적이 확인된 곳이다. 곧 이곳을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곳을 통해 유입된 문명이 독천의 거푸집에 확인되는 새로운 문명을 꽃피우게 했고, 시종에서 그 문명의 절정을 이루게 했다.

이처럼 나불도는 영산 내해를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 문명의 시발점이었다. 지리적으로 전남의 중심에 해당하여 지역의 균형발전 거점 역할에 적합한 곳이었다. 나불도는 무안, 함평, 나주, 광주, 담양, 화순 등의 관문인 영산강 입구에 있어 교류·융합의 마한 문명의 통로 역할을 한 상징적 장소였다.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가야,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교류·융합을 통해 형성된 마한의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난 곳이기도 하였다. 서해와 남해의 교차점에 위치하여 동아시아의 문화 허브 기능을 한 마한의 상징을 구현하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기도 하였다. 해상을 통한 교류와 융합의 ‘영암 마한’과 전라남도 슬로건 ‘해상강국 마한’의 상징적인 장소다.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곳에 있는 후보지는 일본, 중국, 동남아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교류·융합되어 마한 문명이 창조한 곳에 위치하여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동아시아의 허브를 지향한 전라남도의 역사적 정체성의 표상으로 현재 전라남도의 지향성과 일치하고 있는 곳이다. 해남반도와 신안 일대에 산재한 마한유적과 영산 내해의 마한유적, 월출산 해양제사 유적을 포괄할 수 있는 센터 역할이 가장 적합한 곳이다. 결론적으로 800년을 이어온 전라도 정체성의 토대인 마한 정체성의 연속성을 확인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필자가 평소 센터 후보지 기준으로 삼은 역사성과 장소성을 모두 갖춘 공간이다.       
                      
      <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