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52]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의 의미(상)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가 확정된 가운데 건립 후보지로 선정된 삼호읍 나불도 전경. 나불도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문화의 시발점이다.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가 확정된 가운데 건립 후보지로 선정된 삼호읍 나불도 전경. 나불도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문화의 시발점이다.

제18회 시종면민의 날이 지난 4월 21일 있었다. 마한 시대의 복장을 하고 깃발을 들고 시종면 소재지를 돌아 행사장인 시종초등학교로 들어가는 행렬이 장관이었다. 재경향우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찾은 출향인과 지역 주민들이 4년 만에 열린 행사에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하루 전,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유치가 발표되어 행사를 더욱 뜻깊게 하였다. 필자도 행사에 참여하여 옥야리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마한 밥상’을 대접받았다. 

시종은 대한민국 마한 유산의 최대 보고(寶庫)이다. 이곳에는 50기가 넘는 대형고분이 밀집된 고분군과 전국 최초, 유일의 마한문화공원, 전국 최초의 마한축제, 2022년 전라남도 마한행사가 열린 장소, 특히 시종면을 ‘마한면’으로 개칭 작업 등 지역 주민이 일체가 되어 마한의 역사성을 지역의 정체성으로 구현하고 있는 곳이다. 

‘영암 마한’의 역사성을 10년 가까이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는 필자는 영암인, 특히 시종 주민들이 보여준 ‘영암 마한’에 대한 열정에 깊은 감동과 애정을 느낀다. 특히 노순금 부녀회장을 중심으로 부녀회가 개발한 ‘마한 밥상’, 시종 부녀회가 참여한 ‘마한 그림 그리기 대회’ 등은 ‘영암 마한’의 대표적 유산이다. 이러한 시종 주민들의 뜨거운 마한 사랑이 이번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이하 센터) 유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믿는다. 시종 주민들은 시종 아닌 나불도가 센터 후보지로 선정된 것에 대해 당황하면서도 센터 유치의 여러 요소 때문에 불가피하게 위치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우승희 군수의 설명을 대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시종 마한’보다 ‘영암 마한’을, ‘영암 마한’보다 대한민국 정체성의 상징 ‘마한’의 중심지가 ‘영암’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더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마한’의 화려한 부활 

필자는 7년 가까이 영암에서 ‘영암 마한’을 외쳤다. 물론 그 중심에 본보가 큰 역할을 하였다. 영암은 여느 곳보다 마한에 대한 애정이 강하였다. 2천 년 전부터 형성된 마한의 정체성이 오롯이 계승된 때문이다. 여기에 30년 전부터 추진된 마한 정체성 복원 노력이 최근 본격적으로 그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중요한 계기였다. 이러한 지역민의 뜨거운 노력이 뜻깊은 성과를 얻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이번 유치 준비 과정에 군수 이하 영암군청 공무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영암의 민·관은 정말 하나가 되어 ‘마한의 심장, 영암’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 필자가 사용한 ‘마한의 심장, 영암’이라는 말도 이제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영암 마한’의 특성이 토착적 전통에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내륙으로 확산시키고, 주변국으로도 전파한 역사적 경험이 향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하려고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간 두 달 가까이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대한민국 국호인 ‘한(韓)’의 기원이 되는 마한을 연구하는 총본산을 자기 지역에 두고자 하였던 것은 단순히 국책연구기관 한 곳의 유치 의미를 넘어 민족사 정체성의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2020년 5월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에 마한의 공간 범위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으로 한정하였으나 이제는 마한 특별법의 공간적 범위가 경상도·강원도를 제외한 전 부분으로 확장되었다. 한반도 정체성의 상징인 ‘마한’이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마한에서 변한·진한이 갈라져 나왔고, 백제가 마한 땅에서 둥지를 틀었다. 한반도 중남부의 한국사 원형이 마한사이다. 마한은 고유문화에 대륙과 해양문화를 용해(溶解)시켜 새로운 문명으로 발전시키며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기원후 6세기 중엽까지 800년 넘게 독자적 문명을 형성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필자는 이를 ‘마한 르네상스’라 부른다. 이러한 특성의 마한 문명이 가장 두드러지게 형성된 곳이 영산강 유역이다. 영산강은 강(江)이라기보다 내해(內海)에 가깝다. (필자는 ‘영산 지중해’라 부른다.) 영산 지중해는 중국, 일본, 가야, 베트남 등 여러 나라와 교류가 이루어진 허브였다. ‘마한 특별법’에서 ‘영산강 유역의 전남’을 공간적 범위를 설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전라남도가 ‘해상강국 마한’을 표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에 ‘남해만’이라 불렀던 영산 지중해 대부분을 차지한 영암 시종에는 한 곳에 50기가 훨씬 넘는 독무덤이 집중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마한 고분군이 있다. 나주 반남고분 출토 금동관과 동일한 금동관 편(片)이 출토되어 나주 반남과 영암 시종이 같은 정치체임을 밝혀주어 국가사적 지정을 눈앞에 둔 쌍무덤, 왜와 가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마한 문명을 창조한 결정적 증거를 보여 준 옥야리 장동 고분의 토괴(土塊), 모든 고분에서 쏟아져 나온 옥(玉) 유물과 영산강식 토기 등은 이 지역이 마한 문명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한의 정체성이 깃든 나불도

이러한 영암 마한 문명의 형성은 지역의 고유문화에 해양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문화와의 교류 융합을 통해서였다. 낙지의 거리가 있는 독천에서 수습된 국보 ‘전 영암 거푸집 일괄’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세형동검 문화가 해양으로 유입된 결정적 증거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유물만이 출토된 데 반해 영암에서는 당대에 고도로 발달한 기술력을 갖춘 공방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유입된 해양문화가 기존 지석묘 문화와 결합되는 모습이 서호면 엄길리 지석묘군에서 확인되고, 영산 내해의 초입에 위치한 나불도 패총(貝塚)(기원전 1세기 전후)은 이곳이 해양과 내륙을 연결하는 결절지 임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영산 지중해에서 영암이 차지하는 지리적·공간적 특성은 해양과 내륙을 연결하는 수륙 거점의 중심지로서 마한문명 형성에 중요한 연결 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월출산에 가득한 해양제사 유적과 마한문화공원 인근에 있는 남해신사는 해양신앙이 간직되어 있다. 

시종에 집중된 독무덤과 영산 내해에 형성된 해양신앙은 세계유산 등재의 핵심 요소인 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한다. 마한의 정체성이 형성된 마한문명의 중심지에 마한역사를 연구하는 총본산인 센터가 들어선 것은, 이러한 역사성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패총이 출토된 나불도가 후보지로 선정된 것은 영암군의 추천이 받아 들여졌다. 생소한 나불도가 후보지로 선정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마한의 ‘역사성’만 놓고 보면 시종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암군이 나불도를 후보지로 추천한 것은 센터가 지니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면서도 마한의 전체를 아우르려는 원대한 염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보지 나불도는 역사성과 상징성에서 마한의 정체성이 오롯이 깃든 곳이다. 영산 내해의 입구에 해당하는 이곳은 교류·융합의 마한 문명 통로 역할을 한 상징적 장소였다. 이곳을 통해 유입된 마한 문명의 싹이 영산 내해를 거슬러 시종 지역에서 ‘화려한 마한 문명’을 꽃피웠다. 나불도 후보지는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꽃피운 마한문화의 시발점이자 지역 균형발전 거점 역할의 으뜸 지역으로, ‘마한의 심장, 영암’, ‘해상강국 마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허브’라는 슬로건을 포괄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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