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배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초등학교장 / 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 / ​​​​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신용배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초등학교장 / 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 / ​​​​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일상의 대부분을 우린 말하며 들으며 산다. 가족과 직장의 동료나 사회적 관계 속의 일원들과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이 말하고 듣는 데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말을 더 잘해야 한다

는 생각이 옳겠다고 하겠지만 이게 아니란다. 일반적인 언어활동에서 말하기는 30% 정도이지만 듣기는 그보다 훨씬 많은 45%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 말할 때 듣기는 세 번 하라 했나 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만 있다고 제대로 듣는다 할 수 있을까? 

말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말속에 내재된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면서 듣는 것이야말로 상호 간의 교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디딤돌이다. 

“집 뒤에서 놀았는데 어떻게 보여요?”

필자는 오랜 세월 교단에서 보냈다. 일종의 말하는 직업이어서 말을 잘하려 애를 써야 했던 나날이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열심히 말을 했다.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고 나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는 훌륭한 스승이라는 자긍심이 충만해 있었다. 그런 내게 교육자로서의 책무와 자격을 반추하면서 재정립하게 되는 사건(?) 하나가 있었다. 

교직생활 이십여 년이 지나던 어느 해였다. 교단생활에서 처음으로 1학년을 맡은 지 불과 채 한 달도 안 되는 어느 날 월요일 첫 시간이었다. 시골의 소규모 학교에서 교무 일을 맡다 보니 월요일 아침은 가장 바쁜 시간이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아이들에게 으레 단골로 내어주는 숙제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일요일에 있었던 가장 재미있거나 슬픈 일을 그림으로 그려 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날도 각자 그려 온 그림을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씩 나와 설명하는데 자세하고 재미나게 얘기한 어린이에게는 상품으로 연필이나 공책을 주어왔다. 학교 교무의 바쁜 월요일 아침 시간을 확보하는 방편(?)이기 때문이었다. 한 아이씩 나와서 하는 설명은 귓전으로 흘리고 박수 소리가 들리면 나도 손뼉을 쳐주곤 하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설명을 하고 난 뒤인데 손뼉은커녕 오히려 야유를 보내는 게 아닌가. 보던 업무를 멈추고 보니 반장이다. 공부도 제일 잘하고 야무지며 특히 그림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기에 의아해서 말했다. 

“얘야! 선생님이 잘 듣지 못했다. 한 번 더 설명해 줄래?” 반장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 쪽으로 보이면서 다시 말했다. 내용인즉, 어제 자기 집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소꿉놀이를 했으며, 누구는 엄마가 되어 밥을 짓고 누구는 된장국을 끓이고 또 누구는 반찬을 만들었다는 등, 손짓 몸짓까지 신이 나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설명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그림이었다. 

“아니, 어제 너희 집에서 밥해 먹고 놀았다며?” “예, 그랬어요.” “그런데 웬 기와집이야?”그랬다. 도화지에는 달랑 커다란 기와집 한 채만이 그려져 있었고 밥하며 놀고 있는 그림은 어디에도 없으니 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너 다른 그림을 가져왔구나. 그렇지?” “아녜요, 이것이 내가 어제 그린 거예요.” “그러면 소꿉놀이는 어디에서 한 건데?” “아! 알았다. 너희 집 방안에서 놀았구나?”나는 영리한 아이라 방 안에서 노는 것을 그릴 수가 없기에 아마 집만 그렸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반장은 그림을 휙 뒤집어 보여주면서, “여기서요” 하는 게 아닌가. “거기는 아무 그림도 없잖아.” “선생님 우리 집 뒤에서 놀았어요. 집 뒨데 안 보이잖아요?”

듣는 힘은 가슴에서 나온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의 그림을 정리하다가 반장의 그림을 보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 아이가 했던 설명을 상기해 보니, 글쎄 그때서야 집 뒤에서 열심히 밥을 짓는 아이들이 보이고, 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된장국이 끓으면서 구수한 냄새까지 나는 게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솔직히 집 뒤에서 놀았기에 안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적만 해도 ‘영리한 애가 오늘 왜 이래.’라는 생각을 했었다.

갑자기,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일학년 어린애의 속마음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한 내가 유능한 교사라고 자부하며 지낸 날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선생님은 뭐든지 다 안다’라며 자만했던 교단생활을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반성이 크다. 

물론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아이건 어른이건 대화를 할 때면 상대방의 말(言)에 담긴 속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듣는 태도가 습관으로 굳어졌다. 나에겐 인간관계의 중요한 지표라서 그 일이 고맙기 그지없다. 

“말을 가슴으로 들으면 어떤 말에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이 편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최고의 방편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