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행 / ​​​​군서면 모정리 / ​​​​영암지역자활센터 센터장 / ​​​​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전라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장
이삼행 / ​​​​군서면 모정리 / ​​​​영암지역자활센터 센터장 / ​​​​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전라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장

일본은 왜 먼 이웃으로 남는가

4년 전 사무실 입구 현관에 붙였던 ‘No Japan’ 현수막을 이제는 떼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일본 여행은 가지 않는다, 일본제품은 사지도 입지도 먹지도 않는다는 불매운동을 벌였던 작은 현수막이 요즘 들어 눈에 크게 들어온다.

국내 보수언론과 일본의 언론들은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3월16~17일)을 일컬어 ‘미래로 함께 나아갈 출발점이 된 한‧일 정상회담’ ‘경제와 안보에 큰 도움이 될 것’ 등 그 성과를 부각하는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진실은 무엇인가? 국민은 의구심이 많다. 12년 만의 정상회담의 결과라고 하지만 합의문이나 공동선언문이 없다.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합의 사실 한 가지는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 일본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1965년 한일 청구권 자금을 받은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이 자금을 출연,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도록 한다.’ 

윤석열 정부는 5년 전 우리 대법원의 ‘일본 정부와 기업은 사과와 배상하라’는 판결을 무시하고 대신 한국의 기업들이 돈을 내는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을 제시하여 일본을 흐뭇하게 했다. 

58년 전 한일협정, 굴욕외교의 뿌리

1965년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국민의 반대를 억압하고 한일협정을 추진했다. 당시 한·일 간에는 한일 기본관계 조약과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한일 기본관계 조약(1965.6.22.)에서 식민 지배 36년 동안 일본의 침략행위는 잘못된 과거였음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은 일본이 과거의 식민통치를 정당화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지금도 끝없이 이어지는 일본의 망언과 역사부정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방 후 한국 국민은 전쟁의 식민지 피해자로서 가해자였던 일본에게 배상을 받을 국제법적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미국은 일본의 주장에 동조했고, 한국에 대해 교전 당사국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은 국내·외에서 목숨 바쳐 싸웠던 항일 독립투쟁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1965.6.22.)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오히라 일본 외상이 1962년 11월 비밀회담으로 체결되었다. 한일회담 타결의 조건으로 ‘일본이 한국에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 정부차관 2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메모 형식의 밀약이었다. 일본은 3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3조4천억원 정도)와 정부차관 2억 달러는 한국에 식민지 지배 배상금으로 지불하는 게 아니라 ‘독립축하금’ 혹은 ‘경제협력자금’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일본은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 및 배상이라는 자금의 명목을 부정하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후 1950년대에 일본은 주변 침략 국가인 필리핀·베트남·버마·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 배상금을 총 3천643억4천880만엔(약 11억 달러)를 지급하였다. 피해 아시아국은 전쟁으로 잠시 점령당한 피해를 배상금으로 당당히 받았지만 우리는 ‘독립축하금’이라는 어이없는 명목의 돈을 받고 대일청구권을 포기하였다. 1965년 한일협정은 ‘양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선 사과 후 배상이라는 기본원칙도 없는 매국적인 조문을 작성하였다.
 
과거 무조건 덮고 미래로 갈 수는 없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미국을 정점으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계를 강화하여 중국을 견제·포위하려는 신냉전의 거대한 지각변동 과정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 추진, 정전협정에 의한 한반도 평화 정착 등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와 있다.

한·일 관계는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에 대한 공통의 역사 인식 없이 우호 협력과 평화와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

2024년부터 일본 교과서에 조선인 강제징병을 부인하며 '일본군의 병사로 참가하고'라고 수정되거나 삭제된다. '일본군 위안부'도 그냥 '위안부'로 기술하거나 삭제된다. 이미 2012년부터 대부분 일본 교과서에서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명시했는데 최근 한일 정상회담 이후 내년도 학교 교과서에는 왜곡이 더 심각해졌다. “독도는 일본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고 기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일본 내각 간부들은 윤석열 정부에게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논의하고 윤 정부의 임기 내에 이 문제 해결을 강하게 호소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다. 일본 각료들은 왜 윤석열 정부와 위안부 합의, 독도 문제까지 합의가 가능하다고 기대하는 것인가?

한국정부의 자국 대법원 판결(2018.10)을 무시하고, 역사 왜곡에 눈 감는 모습을 보면서, 독도문제.원전 오염수 방류 등도 양보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58년 전 굴욕 외교와 협정이 너무도 한스러운데 일본에게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인가? 참으로 기가 막힐 위기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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