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49]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위치 선정과 영암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경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센터의 위치는 지정학적·역사학적 상징성이 있는 곳에 건립돼야 한다. 시종은 여러 고분에서 ‘교류·융합’을 통한 동아시아 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영암 마한’의 특징이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시종 옥야리 고분군과 거푸집.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경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센터의 위치는 지정학적·역사학적 상징성이 있는 곳에 건립돼야 한다. 시종은 여러 고분에서 ‘교류·융합’을 통한 동아시아 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영암 마한’의 특징이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시종 옥야리 고분군과 거푸집.

지난 3월 31일 왕인문화축제가 열렸던 행사장을 찾았다. 4년 만에 열린 행사인 데다 벚꽃이 만개하여 행사장을 찾는 영암주민 및 외부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전 군민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동아시아 문명의 허브 역할을 한 고대 마한인의 모습을 본 듯하였다. 행사장에서 많은 군민을 만났다. 한결같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이하 센터)를 꼭 영암에 유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축제 개막행사도 센터 유치기원 행사였을 정도로 영암군·의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발 벗고 나섰다. 본란을 통해 이미 밝혔지만, 마한 전문가의 관점에서 센터 건립의 당위성 및 위치 선정에 대한 의견을 재론하고자 한다.
 
지정학적·역사학적 당위성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한반도 남부에 역사를 남겼다. 마한에서 변한·진한이 갈라져 나왔고, 마한 사람이 진한·변한의 왕을 하였다. 마한 역사가 한반도 중남부의 역사이다. 마한은 6세기 중엽 마한에 속한 백제와 통합할 때까지 거의 800년 동안 독자적인 역사를 일구었다. 중국기록에 나타난 마한 관련 유물이 영산강 유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특히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문명의 허브 기능을 하며 찬란한 마한 문명을 일군 터전이 영산강 유역이었음을 곳곳의 마한 유적은 말하고 있다. 

2019년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될 때 ‘마한’을 포함하려고 전라남도·영암군이 발 벗고 나섰다. 전라남도가 ‘해상강국 마한’을, 영암군이 ‘마한의 심장’을 표방한 데는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한의 정체성을 지역의 나아가야 할 방향성으로 삼으려는 간절함이 들어 있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에서 출토된 많은 마한 유산을 전시할 공간은 물론 체계적인 연구기관이 변변치 않다. 교과서에 한두 줄 서술에 불과한 마한과 달리 한쪽 이상을 차지한 가야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국립가야문화센터가 2022년 착공되었다. 한국고대사의 원형인 마한을 방치한 채 마한에서 파생된 신라, 백제, 가야사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미 본란 및 본보의 사설·심층 취재를 통해 센터를 영암에 유치해야 할 당위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지만, 센터 건립은 외형적인 지역 불균형뿐만 아니라 역사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2021년 전라남도가 센터 건립을 대선공약으로 건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에 나섰고, 필자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하였다. 특히 전라남도의 끈질긴 노력으로 2023년 전라남도 국비 예산에 센터 건립 타당성 예산 2억원이 반영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자 전남을 비롯하여 광주·충남 등 여러 곳에서 센터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센터 건립에는 마한의 역사성·공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아울러 접근성·활용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공간적으로 전남을 포함하여 서울, 경기, 인천, 충남북, 전북, 광주 등이 마한의 영역이나, 2019년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 제정 당시, 마한의 공간 범위를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 일대 마한 시대의 유적·유물이 분포 지역’이라 분명히 하였다. 곧 ‘영산강 유역의 전남지역’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영산 내해를 중심으로 ‘교류·융합’을 통해 독창성 있는 마한 문명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센터 위치의 지정학적·역사학적 당위성이다. 

‘영암 마한’의 특징

그런데 10여 곳 가까운 곳에서 센터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거의 무관심하였던 지역조차 센터 유치에 나서고 있어 센터 유치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센터 건립을 무조건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려는 운동이다. 특별법 제정 및 센터 건립 필요성 등을 누구보다 앞장서 주장한 필자는 이러한 지역적 논란을 이미 예상하었다. 어느 지역에 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마한의 정체성·공간성을 확보하고 활용성까지를 포괄할 수 있을 것인지 마음을 비우고 봐야 한다.  

필자는 1917년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이 출토된 되어 ‘마한 왕도’라는 수식어가 붙은 나주와 나주 이상으로 마한의 역사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영암이 센터 위치의 적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주 반남과 경계를 이룬 영암 시종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마한 고분군이 집중되어 있어 이곳이 고대 마한의 중심지임을 말하고 있다. 국가사적 지정을 눈앞에 둔 시종 쌍무덤 출토 유물은 반남면 신촌리 9호분과 동일한 금동관 편이 나와 이 지역도, 반남처럼, 마한 왕도의 구성 지역임을 밝혀 주었다. 또한, 시종의 여러 고분에서 ‘교류·융합’을 통한 동아시아 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영암 마한’의 특징이 오롯이 보인다. 동아시아 허브 역할을 한 영산 내해 해양신앙의 상징인 남해신사와 해양제사 유적이 가득한 월출산, 인접한 나주 반남 고분군과 국립나주박물관 등 마한의 역사성 및 자원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영암 마한’의 상징인 독무덤과 해양유적은 마한 유산의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계유산 등재 기준을 충족하고 남는다. 영산 내해의 입구인 나불도에는 철기시대 패총이 있어 이곳이 마한시대 동아시아 허브의 전초기지임을 말하고 있다. 나불도와 가까운 독천에서 출토된 ‘거푸집 일괄 유물’은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영암 마한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징성이 있는 곳에 센터를 건립해야 함은 물론이다. 센터 건립의 명분이다.
 
왜 ‘영암’이어야 하는가

그런데 영산 내해의 마한의 정체성을 계승한 대표적인 곳이 영암과 나주 지역이다. 일찍부터 마한의 정체성을 밝히려고 노력한 두 지역 가운데 한 곳에 센터를 건립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행정구역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이번 센터는 영산 내해의 영암만이 바라보이는 곳에 건립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것은 해양신앙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허브 기능을 한 마한 문명의 성격이 이곳에 오롯이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같은 마한연맹체를 형성하였으면서도 나주에는 국립나주박물관·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복암리 고분전시관 등 관련 기관이 세 곳이나 있다. 하지만 영암에는 유물전시관 하나 없다. 역사 균형 차원에서 영암에 센터를 두어 과거 ‘내비리국’이라는 하나의 마한연맹체로써 마한 문명을 창조하였던 영광을 찾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센터 유치가 지역·역사 균형발전을 통한 마한 문명 전체를 복원하는 좋은 수단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곳의 역사성이 부족한데도 지역균형 차원에서 배려해달라고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당연한 주장이고 요구다. 

특히 어려운 재정여건에서도 1992년 결성된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추진했던 학술세미나 및 답사프로그램 예산을 해마다 지원하였고, 2003년 전국 유일의 마한역사문화공원 조성, 2015년부터 시행한 전국최초 마한축제를 개최하는 등 30년 넘게 마한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영암군, 그리고 시종면의 ‘마한면’ 개칭을 추진하며 지난 설 연휴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플래카드를 여러 곳에 게시하여 어느 지역보다 자발적으로 마한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영암군민의 간절한 염원도 센터 위치를 결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계속>

글=박해현
(문학박사·초당대 교수 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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