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배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초등학교장 / 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 / ​​​​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신용배 / ​​​​덕진면 노송리 출생 / 전 초등학교장 / 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 / ​​​​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얘기한다. 사람 사는 것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이 나아졌음을 말함일 게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한가? 2022년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146개국 중 59번째이며,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는 36위로 발표되었다. 핀란드가 1위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국민이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 했다. 그럼 우리나라는 공정과 평등한 사회에서 그만큼 멀어져 있음을 방증하는 순위인가 싶어 씁쓰레하기도 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반두라’도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소외감이 증가하고 나아가 사회 갈등 요인이 되어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분노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관계에서 각자가 타고난 성품이 같을 수 없으며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과정의 다름에서 야기되는 분열이나 갈등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화나게 한 것인가?

근본은 본인의 문제이다. 내가 바라거나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자신의 무력함에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불안에 대한 나에 대한 분노임이 분명하다. 

사회적인 문제는 어떠한가. 지역 간의 불화, 계층 간의 간극, 거기에다 좌·우, 진보·보수니 하는 이념의 장벽들이 너무 견고하여 상호 간의 갈등을 호소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대중 분노의 양상이다. 그러나 본인의 문제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분노라 하겠다. 사회적인 문제 또한 우리 국민의 성숙화된 민주 의식으로 염려와 불안의 와중에서도 적당한 범주 안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상존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심각하게 염려하는 걱정과 불안은 따로 있다. 그건 누구나 정치의 후진성이라 한다. 정치적인 안정만 이루어진다면 세계를 선도하는 최상위권의 선진국이 될 거라고 모두 믿고 있고, 손만 뻗으면 바로 잡힐 것 같은 잘사는 행복한 나라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 아주 고질적인 정치병폐로 걱정과 불안을 넘어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본다. 겨우 턱걸이로 올라선 선진국의 문턱이 엊그제인데 우리는 여기에서 주저앉고 말아야 하는지 분노한다. 자기들만이 옳고 바르며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싸움만이 난무하는 곳에는 이해와 타협이란 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여겨지는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앞으로 언제쯤에야 5·60위 권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분노는 버릇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즉 나의 기준이나 규칙에서 어긋날 때 화를 낸다. 그런데 이때의 기준이나 규칙은 바로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고 규칙안에서 평가하고 결론지으며 화를 내는 모순이 있다. 곧 나는 맞고 너는 틀렸으므로 내가 아닌 네가 사과하고 고쳐야 한다는 아집의 오류에서 비롯되는 분노들이 문제다.

이러한 고집과 오류는 아주 작은 일이나 짧은 시간에도 곧잘 화를 내게 되고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고 급기야 무관한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화근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는 매우 나쁜 버릇으로 고착되어 자아통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분노하면 진다 

싸움에서도 불리한 자가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고, 결코 물지도 못하면서 사납게 짖어대는 개의 허세와 같은 실상이 분노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화가 쌓이면 병을 얻게 되므로 분노는 즉각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노는 표출하면 할수록 더 쉽게 일어나고 더욱 강해짐으로써 결국은 화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쌓이고 나중에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분노하게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을 갖는다. ​  
 
분노는 다스리면 선해진다

분노라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가 침해를 받거나 공정과 공평한 기준이나 규칙에서 벗어난 경우를 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정당한 사유 앞엔 분노할 자유와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노함으로써 해결되는 좋은 분노, 선한 분노라 해도 대게의 분노는 나와 너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근원이 될 여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무조건 억눌러야 한다거나 그와는 반대로 충동적으로 과격하게 분출하는 것이 아니고,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리는 일이다. “나는 왜 분노하려 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면 옳은 것일까?” 그리고 분노가 지나간 후의 되씹어 생각해 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헤아려 보는 일이다.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며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로 앙금을 씻어내는 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보람차고 자존감을 높이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곳에 어찌 좋은 일만 있으랴

참고 이해하며 타협하면서 함께하는 너와 나라면 그건 바로 나의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분노는 그것을 부은 곳보다 담고 있는 그릇을 더 많이 훼손하는 염산과도 같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